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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첫 소련입국 한국인 유덕형씨 기행문 유덕형 자서|유덕형(백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모스크바」상가의 「쇼·윈도」는 지나가는 행인들을 유혹해서 끌어들일 만큼 하지 못했다. 「쇼·윈도」에 상품을 전시하더라도 세련된 감각이 없어 보였고 그저 몇 가지만 늘어놓은 듯 했다. 아예 「쇼·윈도」가 없는 상점도 많았다.

<아예 「쇼·윈도」없는 상점도>
거리를 다녀보면 길 양쪽으로 관공서 같은 건물이 즐비했고 그 사이 사이에 끼여있는 것들이 상점인 듯 했다. 그것도 조그마하지가 않고 모두가 큼직큼직했다.
내가 들어가 본 붉은 광장의 「굼」백화점은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하루에 40만명이 「쇼핑」을 할 수 있다는 대규모의 것이었다. 「뉴요크」의 「매이시」백화점이 세계에서 제일 큰 백화점이라 하고있는데 둘다 워낙 큰 규모라 내 눈짐작으로는 어떤게 더 큰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매이시」백화점은 위로 올라간 수십 층 높이의 현대적 건물인데 비해 「굼」백화점은 높이는 3층밖에 안되지만 옆으로 넓게 퍼진 전통적인 웅장한 건물이었다.
거진 정4각 행인 「굼」백화점은 다시 그 안에 길이 여러 갈래로 나있었고 각「파트」별로 물건 종류가 다른 듯 했다. 주로 일반 소비재상품들을 팔았고 모두가 국산품인 것 같았다.

<아직도 주판 쓰는 백화점>
상품은 모두가 튼튼하고 실용적으로 보이는데 포장이 시원잖은게 특징이었다. 모두가 서구와는 대조적으로 「쇼·윈도」나 포장 등 선전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거기에서 일하는 점원들은 20대의 여성들이 많았고 40대 중년여인들도 눈에 띄었다. 물론 국영백화점이니까 점원들도 모두 공무원이었다. 여기서는 일본사람들 같은 「서비스」중심의 상술은 없는 것 같았지만 점원들은 아주 불친절한 것은 아니었다.
한가지 여기 상점에서 내 눈길을 끈 것은 아직도 주판을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다란 우리네 주판과는 달리 한 줄에 알이 l0개씩 끼워있는 뭉퉁한 것이었다.

<「필름」사기 하늘의 별 따기>
시험삼아 물건을 하나 샀는데 점원과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거기는 영어를 아는 사람이 없는 듯 했다. 통역을 데려가지 않아 할 수 없이 손짓으로 그 주판에다 계산했다. 물건에 정가표가 붙어 있는게 다행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돈과 물건을 맞바꾸지 않았다. 물건값을 안 다음에는 「카운터」에 줄을 서서 전표를 사고 그 전표를 갖다줘야 물건을 내줬다. 여기서 내가 산 물건은 담뱃대와 담배 함이었는데 견고하기가 말할 수 없었고 담배 함은 아예 나무와 철판으로 만든 것이었다.
「모스크바」의 백화점들은 문자그대로 백화가 다 있는 것이 아니고 전문분야가 따로 있다고 했다.
통조림 종류만 파는 백화점. 어린이용 백화점등이 있다고 했으며 수입품만 파는 백화점도 있었다. 「러시아·호텔」안에 있는 이 수입품백화점에 들어가 보니 「굼」백화점과는 아예 색깔이 달랐고 고급물건도 없는 것이 없었다. 여기서는 「달러」만이 통용되는데 소련사람들 중에서 여기에 올 수 있는 사람은 특권층에 국한돼 있는 듯 했다.
이곳에서는 「필름」사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나마 백화점을 뒤지다시피 하여 간신히 하나 산 흑백「필름」을 「매거진」에 감지 않을 줄도 모르고 까만 포장지를 뜯었더니 바로 생「필름」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여기 사람들은 「필름」을 사더라도 밤에 불을 꺼놓고 「매거진」에 다시 끼워야 하는 모양이었다. 할 수 없이 「칼라·필름」을 소련대표에게 부탁해서 간신히 살 수 있었다.

<서구서 귀한 「캐비아」흔해>
「고르키」가의 양장점을 둘러봐도 서구와 같은 최신유행이란 것은 볼 수 없었고 모두가 몇 해전부터 그대로 걸려있는 듯 느껴지는 그런 의상들뿐이었다. 이에 비해 길거리의 어린이들의 옷은 밝고 화려한 것이 퍽 대조적이었다. 「모스크바」에 오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은 모피류·목각류·보석·「캐비아」 그리고 토산물 등이라고 했다.
이곳에 있는 동안 주최측이 열어준 「부페」식 만찬에는 항상 「캐비아」라는 상어 알이 나왔다.
이 「캐비아」는 서구에서도 백만장자의 특별「파티」에나 나오는 고급음식으로 보통 사람은 맛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술안주로는 그저 그만이라고 했지만 내 입에는 조금 짭짤하고 씁쓸한 맛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소련에 온 김에 본전이나 뽑으려고 이 「캐비아」를 막 집어먹었더니 나중에 물만 들이켜서 혼이 났다.
「고르키」가의 한 식당에 가서 「비프·스테이크」를 먹을 때는 우리 나라의 오이지 같은 것이 나와 무척 반가왔다. 여기 음식들이 내 식성에 맞지 않아 고생이었는데 오이지가 입맛을 돋두어 주었다.
내가 오이지를 잘먹자 주인은 한 접시를 더 갖다주며 많이 먹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 새로 담근 것이 나오지 않아 지금쯤 맛이 갈 때라고 말했다. 그래도 나에겐 꿀맛 같아 오이지로 실컷 배를 불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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