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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1주일』(7)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소련이라는 사회가 조직적이고 획일적이어서 일견 모든 것이 정확한 「시스팀」속에 돌아가는 질서 있는 사회처럼 보였지만 그러나 그 속에서도 무질서는 어느 구석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물론 무질서란 우리가 살고있는 어느 사회에도 얼마든지 있는 일이다. 그러나 서구사회는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있는 것이지만 이에 비해 소련사회는 질서 속에 무질서가 있다는 점이 분명히 다른 점이었다. 따라서 소련사회의 무질서는 나에게 오히려 친근감을 주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곳곳에 무질서 오히려 친근감>
이러한 무질서는 내가 「모스크바」에 머무른 짧은 기간동안에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었다. 그 사회에 맞지 않는 이질적인 것은 모두 무질서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얘기한 「추잉검」을 달라고 졸졸 따라 다니는 소년들도 그 사회에서는 확실히 무질서의 한 표본이었다. 연극을 봐도 마찬가지였다. 굉장히 조직적으로 만들어졌는데도 어쩐지 정리가 하나도 안된 것같이 보이는 것이었다.
하기야 너무 딱딱 들어맞아도 예술로서는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규칙적인 반복으로 너무 앞이 예측되는 것보다는 무언가 한 박자씩 달라지는데 불협화음 같은 아름다움이 있으며 또 그런 것이 바로 현대적 미학인지도 모른다.

<통역양, 친구애인과 데이트>
더우기 무질서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소련사회에서의 남녀의 성「모럴」이었다. 모든 것이 폐쇄된 이 사회에서 어떻게 성「모럴」이 이렇게 무질서할 수 있는가 단지 의아할 뿐이었다.
나의 통역을 맡은 아가씨는 23세쯤 되어 보이는 특수언어교육을 받은 「인텔리」여성이었다. 영국식의 정확한 발음을 했지만 그녀는 작지 않은 내 키보다도 더 크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제로」에 가까운 그런 아가씨였다.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통역을 해주는 그 아가씨를 나는 친한 다른 대표들에게 나의 「보디가드」라면서 웃기도 했었다.

<결혼 후 혼외 「섹스」도 예사>
하루는 극장엘 갔는데 그 통역양이 어떤 남자와 정답게 「데이트」하고 있는 것을 봤다. 상대 남성은 바로 그 전날 내가 「필름」을 사러가는데 안내해 준 청년이었으며 통역양의 친구의 애인이라 했다.

<혼전 임신중절도 흔해>
뭐 친구애인과 극장쯤 가는 것 가지고 그러느냐면 그만이겠지만 그들 사이의 눈초리가 내게는 심상치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다음날 극장에서는 그 청년이 진짜 자기애인(이 아가씨도 통역이었음)과 또 정답게 「데이트」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알고 보니 소련에서는 젊은 남녀들의 혼전 「섹스」가 아주 보편화되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결혼하고 나서도 혼외「섹스」가 보통이고 젊은 여자의 혼전 임신중절도 흔한 일이라 했다.

<길거리선 포옹도 안해>
이와 같이 성「모럴」이 무질서한데도 더욱 이상한 것은 길거리에서 포옹을 하거나 「키스」를 하는 광경을 볼 수 없는 일이었다.
붉은 광장을 옆을 끼고 도는 「모스코」강변을 산책할 때도 「아베크」족은 보지 못했다.
서구 같으면 길에서나 공원 잔디밭에서나 어디서나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일이며 남녀간의 애정의 표시가 남들이 보건 말건 개의치 않고 공개적인데 비해 소련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남이 안보는 뒤로 숨어드는 듯 했다.
공개석상에서는 일체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이며 내가 본 연극·영화에서도 「러브·신」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에로틱」한 것은 토론도 못하고 문학작품에서도 전혀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 성「모럴」이 문란하면서도 그것을 겉으로는 나타내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앞에서도 지적한 내향적 성격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호텔종업원 80%가 여자>
밝은데서는 점잖을 빼다가 극장 같은 음침한 곳에서야 본성을 나타내는 것은 어쩌면 「슬라브」민족의 기질 자체가 밝지 못하고 음성적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남녀의 성「모럴」이 이렇게 발전(?)할 수 있는 것은 이 사회에서는 남녀가 완전히 동등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소련에서는 남녀가 똑같이 일을 하며 전체노동자의 반수가 여자라고 했다. 「모스크바」에서 내가 가본 곳은 어디나 여성근로자가 많았다. 공항에도 여자직원이 남자보다 훨씬 많았고 길에도, 상점에도 여자가 많았다. 내가 묵은 「호텔」에는 전 종업원의 80%가 여자였다. 하여간 남녀가 이렇게 동등하다는 것이 이 사회에서 성의 벽을 무너뜨린 원인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임신 3개월 내 이혼가능>
그런데 여태까지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하기야 남들이 「섹스」를 어떻게 즐기는 것까지야 알바 아니긴 하지만 폐쇄적이고 애정의 표시를 공개적으로 못하는 그러한 사회에서 남녀가 어디서 어떻게 만나길래 성「모럴」이 그럴 수가 있는가하는 점이다. 성문제가 나왔으니 말인데 통역양이 나에게 한가지 재미있는 얘기를 해줬다.
소련에서도 결혼한 남녀가 이혼을 많이 하는데 부인이 임신중일 경우 임신 3개월까지는 이혼을 허용하지만 그후는 아기를 낳고 1년이 지나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성「모럴」의 무질서에 비하면 이것은 또 얼마나 합리적이고 질서 있는 일인가. 이처럼 질서와 무질서는 이곳 어디서나 공존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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