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우리 모두 직무유기로 국회 윤리위 벌을 받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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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혼란과 비능률의 2013년 국회가 막바지로 치닫는 요즘,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 하나가 나왔다.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미방위) 소속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나를 포함한 미방위원 전부를 윤리위에 직무유기로 제소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의원이 ‘자폭성’ 자성(自省) 발언을 할 만큼 미방위 사태는 심각하다. 정기국회에서 법안 처리가 한 건도 없는 것이다. 크기는 공룡인데 일하는 건 베짱이다.

 미방위가 마비된 건 민주당이 KBS 이사회 구조 개선 문제를 법안과 연계시켰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모든 이사진을 노사가 합의한 인사로 추천하고 사장도 이사회 3분의 2(현재는 과반) 동의로 선임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바꿔 여권의 우월적 영향력을 없애려 했다. 이는 민주당이 여당 시절엔 추진하지 않았고 현재 민주당도 참여한 국회 ‘언론공정성 특위’에서도 결론을 내지 못한 것이어서 당연히 새누리당의 반대에 부닥쳤다.

 문제가 이런 상황에 이르렀으면 민주당은 일단 이는 제쳐두고 법안 처리는 정상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국회선진화법을 이용해 민주당이 다른 안건 처리를 미루는 바람에 시급한 원자력안전진흥법까지 발이 묶여 있다.

 이런 실적 부진 상임위는 미방위뿐이 아니다. 보건복지위에도 장애인연금법·노후설계지원관련법·영유아보육법 등이 계류돼 있지만 기초연금 갈등 때문에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농해수위에서도 쌀 목표값을 둘러싼 공방 때문에 다른 민생 법안들이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에 따르면 상임위에서는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발의하기만 하면 어떤 법안도 최장 90일이 소요되는 안건조정위로 넘어가야 한다. 사실상 야당에 법안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상당한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법안 처리가 효율적으로 되느냐의 여부는 상임위라는 1차 전선에서부터 결판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일단 상임위가 정치쟁점과 민생법안을 현명하게 구분하지 않으면 국회선진화법은 ‘국회마비법’이 되고 만다. “모두가 직무유기”라는 노웅래 의원의 지적을 의원들은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