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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피해 방지법 활용…한인 할머니에 영주권 발급

미주중앙

입력

2010년 12월 가디나의 한 노인아파트. 한인 여성 K(당시 76세)씨는 남편 A(당시 84세)씨가 휘두른 지팡이에 무릎을 맞고 쓰러졌다. 부르는 말에 제 때 대답을 하지 않아서였다. 분이 풀리지 않은 A씨는 TV리모콘을 집어 들고 K씨의 얼굴과 팔 등을 수 차례 가격했다. K씨는 매일 반복되는 남편의 구타를 참아야만 했다. K씨의 몸과 마음은 나날이 멍투성이가 돼 갔다.

이혼을 결심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K씨 앞에 닥친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았다. K씨는 시민권자 A씨의 초청으로 영주권 취득 수속을 밟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분이 불안정해 가정 폭력을 참고 사는 한인들은 꽤 많다. 대부분 늦깎이 재혼을 한 60세 이상 여성들의 얘기다. 한인타운 연장자센터의 캐서린 문 소장에 따르면 매년 시민권 교육을 받으러 연장자 센터를 찾는 대다수가 가정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문 소장은 "신분 문제만 해결되면 배우자와 헤어져 살겠다는 분이 50명 중 45명 이상 꼴이다. 폭력과 폭언에 식모처럼 산다"고 설명했다.

문 소장에 따르면 새 삶을 찾아 재혼을 하는 여성들이 신분 문제 해결 등의 명목으로 4~5만 달러의 돈을 배우자 측에 지불한다. 이 같은 풍토를 이용해 고국에 있는 여성을 미국의 남성과 연결 시켜준 뒤, 중간에서 수수료를 챙기는 전문 업체가 있을 정도다. 문제는 아내가 가져온 돈을 다 쓴 뒤부터 시작된다.

K씨의 경우에는 남편 A씨의 가족들이 돈을 요구했다. K씨가 돈이 없다고 하자 A씨의 가족은 2011년 4월에 K씨의 영주권 신청을 취소했다. 고령인 A씨가 병원에 입원한 사이에 본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가족들이 저지른 일 이었다. 이후 가족들은 K씨와 A씨의 관계를 끊으려 주력했다.

대처 방법은 있었다. 여성폭력방지법(VAWA)의 보호를 받는 것이었다. K씨의 사정을 알고 있던 주는사랑체-이민법률센터는 K씨가 VAWA를 통해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도록 도왔다. VAWA는 가정 폭력 피해자 이민 여성에게 초청인 없이 영주권을 주는 법안이다. 주는사랑체-이민법률센터는 K씨가 A씨에게 당한 폭행의 증거 사진과 주변인 진술 등을 수집했다. 또 로욜라 매리마운트 대학의 새리 답슨 디자인 교수는 K씨의 사례를 타이포그래피 작품으로 만들어 옥스나드 시티에서 전시회(2011년 10월)를 열었다. K씨와 같은 이민 여성들의 학대 사실이 알려진 중요한 계기였다. 심사를 진행한 이민국은 결국 K씨를 VAWA의 적용 대상으로 승인해 올해 10월 영주권을 최종 발급해 줬다.

주는사랑체-이민법률센터의 박창형 소장은 "가정 폭력에 시달린 증거만 있으면 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같은 어려움에 처한 분은 많다. 더 많은 한인 단체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사진=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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