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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의 새 정점 『농민문학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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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문단 일각에서 일기 시작한 「리얼리즘」·반「리얼리즘」의 논쟁이 최근에 이르러 『농민문학(혹은 농촌문학)이란 과연 가능한 것인가』하는 새로운 「이슈」로 발전하는 양상을 띄워 주목을 끌고 있다.
1930년대 이른바 「프로」문학이 문학사조의 주류를 형성하던 시대에 한바탕 휘몰아쳤던 「농민문학논쟁」이 「리얼리즘」논쟁의 한 변형으로 「클로스업」된 것은 일부 작가·평론가들이 『전통적으로 농업국가였고 오늘날에도 농업이 가장 기본적인 산업인 나라의 문단에 있어서 농촌문학 및 농촌문학에 대한 이론이 빈약하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이 나라 사회현실의 역리성과 허구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역사적 현상』이라고 지적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김병걸 염무웅 신경림씨 등 대체로 참여문학 계열에 속하는 이들의 주장은 오늘의 농촌현실은 곧 한국현실의 집약적 표현이며 농촌현실에 관한 본질적인 파악이 없으면 한국현실에 대한 올바른 이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농촌문학이, 가령 이광수 심훈 이무영 등의 농촌작품이 일제의 식민지 농촌 수탈이나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그 속성으로 지닌 취약성, 또는 한국농업이 처해 있는 역사적인 생산조건 따위에 대한 동찰이 없으므로 허다한 문학적 결합과 이론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 최근 30년만에 문단에 복귀, 『인간단지』라는 창작집을 발표한 김정한씨의 작품 세계 속에서의 농촌을 가리켜 한국의 역사적 현실을 옳게 투시하는 「리얼리즘」이 선택한 전형적인 장면이라고 단정 지운다.
그러나 이들의 이같은 주장은 「리얼리즘」논쟁에 있어서 이들을 포함, 최일수 구중서 임헌영씨 등의 견해와 상당한 거리를 보였던 김윤식 김현 김치수씨 등으로부터 많은 이론적 견해차에 부딪쳤다.
이들 양자간의 농민문학에 대한 이론적 견해차는 물론 「리얼리즘」문학에 있어서의 이론적 견해차로부터 발전한 것이다.
김현씨는 한국에서의 「리얼리즘」가능성 여부를 검토하는 논문에서 『한국에서 가능한 문학기술 방법은 오히려 「리얼리즘」의 허위성을 밝혀 주는 비평적 혹은 상징적 기술뿐』이라고 설명했으며, 김윤식씨는 이를 뒷받침하는 이유로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리얼리즘」적인 수법으로 드러낸다는 것이 자칫하면 소시민적 영웅주의 및 소시민적 패배주의에 빠질 위험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의 「리얼리즘」문학에 대한 이같은 해석은 농민문학에 대한 이들의 입장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들에 의하면 『농촌문학이라는 어휘 자체가 지금은 얘기할 수 없는 것』(김윤식)이며, 한 사회에 있어서 모순은 농촌이면 농촌, 도시면 도시하는 식으로 어느 한쪽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갖고 있으므로 농촌문학을 따로 떼어서 논한다는 것은 곤란하다(김치수)는 것이다. 특히 김치수씨는 오늘의 농촌소설에서 나타나고 있는 인물의 소영웅화라거나 결말의 과격한 방화같은 경우, 인정삽화의 끈질긴 되풀이라든가 지방주의의 강조, 그리고 농촌과 도시를 분리된 현실을 파악하려는 태도 등은 앞으로 극복되어야 할 문제로 남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어느 쪽이 더 합리적이며 어느 쪽이 덜 합리적이냐 하는 문제를 떠나 농민문학, 혹은 「리얼리즘」문학에 대한 이들 양자간의 견해의 상위는 어떤 형태로든 결말을 보기 힘들겠지만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주요작가들이 이들에 의해 그러한 관점에서 평가되고 있음은 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가령 염무웅씨는 비록 핵심에서 다소 멀어져 있지만 해방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영수씨와 오유권씨의 어떤 일면, 김정한, 하근찬씨의 여러 작품, 그리고 최근의 이문구·방영웅씨에 의해 농민문학의 전통이 꿋꿋하게 지탱돼 오고 있다고 지적하는데 대해 김현씨는 한국의 현실의 모순을 직관으로 파악하는 작가의 놀라운 투시력,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상상력의 작가로서 최인훈·김승옥·박태순씨 등을 꼽는다.
또한 김치수씨가 도시소설에 해당하는 이청준·최인호·김용성씨 등의 작품이 도달한 성과-현실의 모순을 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핵심으로 파악한-를 농촌소설이 흡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데 반해 김병걸·신경림씨는 황석영·박경수씨 등의 작품을 행동미학이 가득찬 작품, 혹 농촌문학에 대한 반성과 정리의 한 표본으로 삼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리얼리즘」문학 혹은 농민문학을 전제로 한 이들의 작가·작품편향은 오늘날 우리 문학의 양대 흐름의 축을 쉽사리 간파할 수 있게 한다. 만약 이것이 개인적인 친소투계 혹은 이론을 초월한 유대관계 따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비판을 받아 마땅하겠지만 비록 다소의 논리적 불합리성이 개재해 있더라도 이것이 확고한 문학이론으로서 파생된 것이라면 「리얼리즘」문학이든 반「리얼리즘」문학이든 참여는 순수든, 혹은 농민문학이든 도시문학이든 이러한 문학적 흐름을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유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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