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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와 보신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사람들은 과학하면 곧 「라디오」니 「카세트·테이프」니 인공위성이니 해서 과학문명이 가져온 이기를 머리에 그리는 모양이다. 그러나 「오토바이」나 「텔리비젼」을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이 곧 과학이 아니란 것은 「오토바이」로 멋진 곡예를 해내는 원숭이라든가 「채늘」7과 9를 썩 잘 틀줄 아는 2살짜리 어린애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시계니 자동차니 하는 것은 결국 과학문명이 가져다준 과실에 불과하며 과학 그 자체는 아니다. 과학은 합리성에 입각한 인간의 창조적 과정 그 자체이다. 생활의 과학화니 국민의 과학화니 할 때 중요한 것은 신제품의 구입이 아니고 과학하는 마음가짐이다.
과학은 합리성과 실증성을 존중한다. 생활의 과학화에 있어서도 합리성이 존중되어야 할 것이며 실증이 뒤따라야만 한다.
옛날 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우두법이 도입되었을 때 사람들은 우두를 맞으면 소가 된다고 우두 맞기를 거부했다. 만약 이것이 현실이라면 보신탕 먹는 사람은 개가 되어야 하고 쌀밥을 먹는 사람은 벼가 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어떻든 당시의 낮은 과학지식과 과학적 사고방식은 우두보급을 무려 30년이나 지연시켰다.
우리주변에는 아직도 궁합(사주팔자)이니 도깨비니 정감록이니 하는 비합리와 부조리가 많이 도사리고 있다.
어느 음식점에 가면 물어보지도 않고 갈비탕에 고춧가루를 잔뜩 쳐서 가져온다. 조미료란 원래 각자의 구미에 알맞은 맛을 내기 위해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것인데 먹는 사람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고춧가루를 쳐주니 위장 약한 사람은 어떻게 먹으라는 것인지.
또 때때로 전화 한 번이면 다 해결되는 문제를 일일이 찾아와 남의 귀중한 시간을 30분이고 1시간이고 빼앗는 사람도 많다. 전화로는 예에 어긋난다고 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당하는 본인은 시간이 아깝다. 전화란 본래 직접 찾아가지 않고도 정확히 용무를 치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발명된 이기(?)인데도….
우리 주변에는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사고방식들이 예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런 사고방식의 개량이야말로 생활과학화의 출발점이 아닐까. <김정흠 고대 이공대 교수·이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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