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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는 왜 황폐 화 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현대시가 꽤 독자들로부터 외면 당하여 읽히지 않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늘 문단의 주요 「이슈」로 되어 왔으며 이에 대한 이유도 여러 차례에 걸쳐 분석·검토된바 있다.
그 이유로서는 주로 난해성의 문제가 거론되었으나 최근 부산 공전 이용훈 교수는『기헌 손낙범 교수 회갑 기념 논문집』(한국 국어 교육 연구회 간)에 발표한 논문에서 한국 시의 황폐화 원인이 자연을 상실 한데 있다고 주장, 시단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 시의 자연 수용 태도』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시적 소재와 주제를 풍요하게 공급하는데 이바지 해 온 자연에 대해 한국의 시조와 현대시가 어떠한 수용 태도를 가져왔는가를 파헤치고 있다. 이 교수는 시조의 자연을 마치「사군자 화」나「산수화 폭」과도 같이 일종 변형 화된 자연으로서 이조의 시인들은 대부분 현실도피나 현세적인 고민을 푸는 구제 양으로 자연을 택했기 때문에 자연이 명료한 시적 표현 대상으로 전혀 인식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한 시조의 이 같은 자연 수용 태도는 현대시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답습되고 있으며 따라서 서구 시의 부단한 영향에 의한 현대시의 시적 자각에도 불구하고 그 몰 인식 적인 자연 수용 태도는 여전히 시조의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에 의하면 가치란 자연에서 비롯된 다기보다는 인간의 이성에서 비롯한다는 논리를 밑받침으로 자연이란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가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T·S·엘리어트」「하토·크레인」등 20세기 현대 시인들과 같이 시인들의 자연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는 현대시를 황폐시키는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윌리엄·워즈워드」를 예로 들면서 그의 일련의 자연 시에서는 자연과 관련되는 체험의 내용이 공간적으로 확대되고 거기서 비롯되는 시적 감동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렇게 자연이 명확한 대상의 인식으로 발전해 가면서 자연에 의한 시적 체험과 감동의 깊이가 더해 가는 과정에서 자연과 시인과의 교감 상태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 논문은 현대시의 황폐화 원인의 하나가 자연을 상실한 데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여 자연을 수용하는 태도에 대한 재인식의 노력이 현대시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결론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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