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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 중의 갑, 보라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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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스캇 보라스

한때 일본을 대표했던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33)는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61)를 지난달 해고했다. 마쓰자카는 보라스와 손을 잡고 미국 프로야구 보스턴과 2007년부터 6년간 5200만 달러(약 550억원) 계약에 성공했다. 당시 보라스는 “마쓰자카는 일본에서 마이클 조던 같은 존재”라고 역설했다. 마쓰자카는 보스턴에서 6년간 50승밖에 올리지 못했다. 보라스는 시장가치가 떨어진 마쓰자카를 신경 쓰지 않았다. 겉으로는 고용주인 마쓰자카가 보라스를 해고한 것이지만, 사실 보라스가 마쓰자카를 버렸다.

 올겨울 보라스는 FA(자유계약선수)가 된 추신수(31)를 세일즈하면서 “한국에선 마이클 조던 같은 선수”라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보라스는 고객(선수)의 가치를 방대한 데이터로 포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보라스는 추신수의 매력을 구체적이며 낙관적으로 수치화했을 것이다. 추신수는 지난 22일(한국시간) 아시아 선수로는 역대 최대 규모인 7년간 1억3000만 달러(약 1380억원)에 텍사스와 계약했다.

 보라스는 평범한 협상가가 아니다. 협상의 전략 중 수용과 타협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선수의 특장점을 잘 포장해서 구매자들이 경쟁하도록 한다. ‘악마의 협상’ ‘벼랑끝 전술’로 불리는 보라스의 협상 전략은 대부분 성공했다. 일반적인 관계를 따지면 에이전트는 구단과 선수에게 을(乙)이지만 보라스는 수퍼갑(甲)으로 군림한다.

 메이저리그 전문가인 송재우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보라스가 아니라도 추신수는 대박을 터뜨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보라스와 손잡으면 최소한 손해 볼 일은 없다’고 믿는다”고 설명했다. 보라스는 1998년 케빈 브라운을 다저스로 이적시키며 7년간 1억500달러 계약을 이끌었고, 2000년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텍사스의 10년간 2억5200만 달러 계약을 성사시켰다. 빅리그 최초의 1억 달러, 2억 달러 계약을 만들어내자 선수들은 보라스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됐다.

 지난해 보라스는 에이전트 수수료(계약액의 5~6%)로만 1300만 달러(약 138억원) 이상을 벌었다. 류현진(26·LA 다저스) 연봉(6년 총액 3600만 달러)의 두 배가 넘는다. 그의 절반만큼 버는 에이전트도 없다. 게다가 보라스는 소속 선수들의 자산관리까지 맡아 추가로 수수료를 번다.

 보라스는 몇 달 전부터 추신수의 목적지를 텍사스로 정해놓고 움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확실한 1번타자가 없는 텍사스에 추신수의 출루율(올 시즌 0.423)은 너무나 매력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협상이 길어지자 보라스는 양키스·보스턴 같은 부자 구단들을 끌어들였다. 마음 급해진 텍사스는 결국 계약서에 사인했다.

 보라스는 또 다른 고객 저코비 엘즈버리(30)를 7년 1억5300만 달러에 양키스로 이적시켰다. 보스턴 선수를 라이벌 구단 양키스에 보내면서 가격을 부풀렸고, 한편으로 추신수의 계약을 위해 두 구단 모두를 활용했다. 뛰어난 선수들을 많이 보유한 데다 구단의 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할 줄 아는 보라스는 이미 미국 메이저리그의 권력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류현진이 다저스와 계약했을 때도 보라스의 전략을 읽을 수 있다. 보라스는 “류현진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으면 일본으로 보내겠다”며 다저스를 압박, 계약마감 1분 전 원하는 계약서를 받아냈다. 마지막 1달러까지 탈탈 털어가는 독한 협상 스타일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등 몇몇 구단은 보라스와 거래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구단은 보라스가 보유한 선수들 때문에 ‘악마의 손’을 잡는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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