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검찰이 다시 사는 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7면

석동현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전 서울동부지검장

지난 2일 취임한 김진태 검찰총장이 지난주 검사장급 이상 간부 인사를 마무리했다. 차근차근 새 출발을 준비하는 분위기다. 김 총장은 취임 일성으로 “표적수사 시비를 없애고 환부만을 도려냄으로써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수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휘방침으로는 ‘바르고 당당하고 겸허한 검찰’을 제시했다. 역대 검찰총장 가운데 이처럼 겸허를 강조한 경우는 처음 보는 것 같다. 문득 그게 총장 한 사람의 결의가 아니라 검찰 전 구성원들이 실천의지로 이어지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우리 검찰에 대한 국민적 신뢰는 최근 몇 년간 발생한 수많은 사건 사고로 인해 거의 바닥 수준이다. 검찰총장이 1년 사이에 두 명이나 불명예 퇴진했는가 하면 검찰 내부 상하급자 간의 일체감도 상당히 옅어졌다. 하지만 검찰은 주저앉을 수 없고, 주저앉아서도 안 되는 주요 국가 기구다.

검찰은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정치적 중립 의지, 종북세력 척결 등 체제수호 의지, 기업이나 관료의 비리 엄벌 등 사정 기능을 강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특수부를 늘리고 금융조사부를 어디로 옮기는 등의 제도개편 말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의 가슴엔 쉽게 와 닿지 않는다. 일반 국민들의 1차적 바람은 검찰이 지금보다 좀 더 힘을 빼고 겸손해지라는 것 같다. 사건관계인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존댓말을 쓰라는 게 아니라 법에 정한 수사권한을 100% 휘두르겠다는 생각부터 버리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검찰에 품은 불만, 특히 인지수사의 경우 무소불위나 가히 ‘조폭’ 수준의 횡포라고 느끼는 이유를 몇 가지 들어보자. 공소시효가 남아 있기만 하면 악착같이 들추고 파헤치고 본다. 이미 아무 탈 없이 7~8년이나 흘렀고, 특별히 누가 피해를 주장하는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피의자든 참고인이든 오늘 전화 한 통화로 당장 내일 오전까지 출두하라고 한다.

기업 활동이나 경영상의 판단일 수 있음에도 기업인 구속에 집착하는 거친 방식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일반 형사사건이나 고소사건도 마찬가지다. 혐의를 받는 사람은 언제 자신을 부를지, 수사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검찰이 가진 수사 절차상의 권한이나 법 해석의 권한은 가급적 국민 통념이나 정서에 부합하게 행사해야 한다. 그래야 사건 관계인이 승복하는 정도가 높아진다. “나만, 우리 기업만 이런 게 아닌데”라는 불만이 퍼져가면 수사의 공정성이 의심을 받게 된다. 검찰은 정말 가려진 이면과 저간의 사정도 살필 줄 알아야 한다. 단지 상하급자 간의 보고와 결재, 논의과정을 통해 나무 밑만 들이 파기보다 숲도 살펴야 할 것이다.

 검찰의 힘은 법 위반을 엄벌할 수 있는 권한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검찰의 힘은 이유가 있으면 관용할 수도 있는 권한에 있다는 점을 젊은 검사들은 인식해야 한다. 기계적 형평이나 교과서적 법리에만 얽매일 것이 아니다. 격조 있고 설득력 있는 수사, 좀 더 합리적인 기소권 행사를 위해 항상 고민해야 한다.

 범죄수사는 쟁점이 되어 있는 사항에 한해, 확실한 증거로 드러난 것 위주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관료나 집단 구성원도 창의적이고 소신 있는 업무 수행이 어렵다. 기업 수사도 마찬가지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면 누구도 적극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투자를 하기 어렵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더 큰 손실과 불이익을 안겨줄 뿐이다. 툭하면 검찰이 과도한 수사로 천덕꾸러기 같다는 소리를 들어서야 되겠는가.

석동현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전 서울동부지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