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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원당의 「세한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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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9세기 이후 서화에 소양이 있는 일급의 지식인들이 수묵을 주로 하는 문인 화풍을 일으켜 당시 화단에 압도적인 영향을 끼쳤다. 곧 강세황·신위·김정희·유숙·전기·김수철·흥선대원군 등이 뛰어난 문인화를 남긴 지식인들이다.
그런 선비의 문인 산수 가운데 조선왕조 5백년에 전무후무한 경지의 작품으로 지목되는 것은 완당 김정희의 「세한도」.
이 세한도는 서화계에 매우 익히 알려진 명화임에도 막상 공개의 기회가 극히 적다. 이번이 15년만의 전시이며, 이 한 점을 보기 위해 몇 번씩 들린다는 감상객마저 없지 않은 형편이다.
이 그림은 금석 학자요 명필인 원당 (1786∼1856) 이 59세 때 당시 준 나라에 체류 중인 선비 우선 이상적에게 보낸 그림 한 폭이다. 원당 보다 19세 연하인 우선이 귀한 서책을 구해 보내자 그 감사함을 표해 세한도를 그리고 또 3백자에 달하는 편지를 써서 자제로 붙였다.
『지난해 만학·대운 두 책을 부쳐 왔고 금년에 또 우경 문편을 부쳐 왔는데 이는 모두 세상에 흔히 있는 것이 아니다. 머나먼 천리 밖에서 구입한 것이요, 여러 해를 걸려서 얻은 것이며 결코 일시의 일이 아니다.
더구나 세상은 물밀 듯이 권력만을 추종하는데 그 같이 심력을 기울여 얻은 것을 해외의 한 초췌하고 고고한 사람에게 주다니…군은 역시 이 세상 사람으로 초연히 권력에 추세 하는 테두리 밖을 떠나서 권력으로 나를 대하지 않는단 말인가.
…공자가 말씀하기를 「세한 연후에야 송백의 후조를 알게 된다」고 하였는데… 성인이 특별히 칭찬한 것은 한갓 후조의 정조와 경절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또한 세한의 시절을 당하여 마음의 느끼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청나라에 12회나 드나들며 이곳 문사들과 교류하고 문화 수입에 공헌한 이상적이다. 그는 원당의 편지를 받고 곧 청조 16 명가로부터 이에 대한 찬사의 글을 받았다. 그 뒷날 후학 김준학이 그림 머리에 다시 그 경위를 밝혀 씀으로써 이 세한 도는 직장의 두루말이로 연결돼 있다.
이 그림은 버석한 갈필로 고송 네 그루와 초옥 한 채를 간결 담박하게 그린 것.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문기를 절로 풍기는 작품이다. 필 선의 묘미를 살려 어떤 자연의 모습을 묘현하되 자신의 고고한 필의에 치중함으로써 국도로 회화적 추상미를 나타낸 것이다. 말하자면 「문자의 향기와 서책의 기풍」의 극치이다.
세한 도는 원래 겨울의 세 가지 관상목인 송· 죽·매를 소재로 삼은 그림이며 곧 그것은 선비의 기개와 통한다. 곧은 정절과 청빈한 생활을 뜻하고 있는 점에서 이 그림은 더욱 높이 평가된다고 해석된다. 가로 70·5cm, 세로 23·8cm. 손세기씨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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