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9)삼화령 삼존불협시 보살 입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한국미술 2천년 전에는 석조물이 거의 없다. 그런데 전국의 그 숱한 석조불상 가운데 유독 삼화령 삼존불협시 보살입상이 대표적 작품으로 선정돼 전시되고 있다.
이 석불은 본시 경주 남산의 삼화령에 3구를 나란히 세웠던 7세기께 삼존불의 하나.
석굴암 형식으로 감실을 만들어 모셨었는데, 전시된 보살 입상은 주불 좌우에 세운 협시 중의 하나로 흔히 「남산아기부처」로 통한다. 동안에 가득 웃음을 담고, 두 협시가 그 동안 경주박물관의 서관 석조 불상실에 진열돼 있었다.
아기부처는 이번 서울 나들이를 오면서 얼굴을 말끔히 씻었지만 경주 있을 때는 볼이 유난히 까매서 인상적이었다. 그 석불실의 여러 불상 중에서도 가장 손때가 빤질빤질하게 묻어 있었다. 관람객들이 지나가면서 무심결에 만져 본 자국이다. 그것도 으례 볼을 쓰다듬은 것이다.
미학적인 구구한 설명을 붙이기 전에 이 아기부처의 손때를 보면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최대공약수를 생각하게 된다.
아름다움을 보는 것으로 만족치 않고 손으로 만져보아 확인하려는 것은 사람의 본능적인 행위이다.
엄연히 「손대지 마시오」의 팻말이 붙어 있는데도 어른이나 아이들이 볼을 쓰다듬는 것은 너무도 한결 같았다. 흡사 돌부처의 볼에서 체온을 감촉 하려는 듯 싶었다.
신라의 불상들은 대체로 근엄한 표정이다. 더구나 통일신라 때의 불상들은 그 당당함에 위압을 느낀다. 그러나 아기부처는 도무지 그런 구석이 전혀 없다. 누구나 예쁘고 귀엽다고 여기도록 천진난만한 얼굴이다. 밝은 볼웃음이다. 신라불상 치고는 이질적인 조각품이다.
신라 사람들도 이 삼화령 삼존불에 대해서는 깊은 신심과 영험함을 느꼈든지 적잖은 설화를 남기고 있다. 삼국유사를 보면 선덕여왕 12년(643년)에 생의란 스님에게 현몽하여 이 돌미륵이 세상에 나타났다고 하였다. 또 충담사가 3월 삼짇날 삼화령 미륵보살에게 차 공양을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경덕왕을 만나 안민가(향가)를 지어 올리고 왕사가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역사적인 유물을 통해 보면 인간미가 흐르는 작품일 수록 많은 얘기를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곧 인간에게 주는 감흥이 깊었고 그만큼 모든 사람들로부터 아낌을 받는 증좌이다. 높이 95㎝, 경주박물관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