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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학습 제한" 대통령 교육공약, 국회서 8개월째 논의조차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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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교육정책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교육 현장에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 ‘공교육 정상화 촉진 특별법’이 대표적이다.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11월 “특별법을 만들어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시험을 금지하고,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고 공약했다. 초·중·고교에서 선행학습이 필요한 교내 시험을 비롯해 입시에서의 출제까지 금지하는 내용이다. 이를 어기면 행·재정적 조치를 내릴 수 있다. 박 대통령은 4월 23일 국무회의에서도 “교과서 외에는 절대로 출제하지 않겠다고 하면 실제로 그렇게 돼야 하고, 선행학습도 (시험에) 내지 않겠다고 하면 실제로 나오지 않아야 한다”며 입법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4월 30일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이 대표 발의한 특별법은 8개월이 되도록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단 한 번도 논의되지 않았다. 지난 6월 법안소위에 상정됐다가 여야 대치로 논의가 중단됐던 게 전부다. 법안을 발의한 강 의원은 22일 “야당이 여당보다 강한 규제를 담은 법안을 먼저 발의한 만큼 야당도 내용에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야당 지도부가 정치적 다툼이 있을 때마다 상임위를 열지 못하게 하는 등 상임위 고유권한까지 막은 게 문제”라고 말했다. “야당이 민생을 위한다면서도 법안 심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도 했다.

 교육 현장에선 혼선이 일고 있다. 일부 사립초등학교에서 1~2학년 정규수업시간에 외국 교과서로 영어를 가르치거나 외국어고에서 이과 과정을 편법 운영하지만 처벌 근거가 없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김승현(숭실고 영어교사) 정책실장은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교육과정을 벗어난 대학별 고사가 또다시 출제될 것”이라며 “내년 대학입시를 앞둔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정부도 당장 내년 교육정책의 방향을 잡기가 어렵다. 교육부 류정섭 공교육진흥과장은 “법 제정 후에도 세부 내용을 정하는 데만 6개월 이상 걸리기 때문에 내년부터 정책을 실행하려면 연말까지는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금 대학정책과장도 “공교육 정상화와 함께 기성회비 징수 근거 마련을 위한 국립대재정회계특별법이나 지방대육성특별법도 연내 처리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교문위 간사인 김희정 의원은 “특별법은 23일 법안심사소위에 안건으로 올라가 있고 박 대통령의 핵심 공약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논의할 것”이라며 “다만 여야가 취지에 공감해도 세부항목 조율 과정에서 시간이 다소 지체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간사인 유기홍 의원은 “교문위에서 논의할 우선순위상 23일 특별법을 다루기 어렵다”며 “여야가 대선에서 함께 공약했던 지방대 육성과 고교 무상교육 등을 먼저 논의하고 특별법은 내년에도 계속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태화·윤석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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