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현예 기자의 '위기의 가족'] 아내의 재테크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사진 중앙포토]

“지난 밤 꿈에 글쎄, 돼지새끼들이 우르르 나오는 거야. 그래서 눈뜨자마자 냅다 복권을 샀지!” 친구가 간밤 꿈 이야기를 한다. 돼지꿈은 로또로, 로또는 또 한 번 거액의 인생역전 스토리로 이야기 길을 터준다. 로또에 당첨되면, 차도 사고 집도 사야지. 생각만 해도 흐뭇하지만, 현실은 늘 가난한 월급쟁이다.

부자가 되는 방법은 뭘까.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안 쓰면 된다”고 하지만, 그 시절은 지났다. 안 쓰는 것보다 잘 쓰고, 잘 굴리는 게 현명한 시대 아닌가. 여기, 10년을 함께 한 부부가 있다. 남편은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을 고스란히 아내에게 가져다 줬다. 아내는, 그 월급을 쪼개 보험을 들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아내의 심상찮은 재테크를 알게 된 남편은 펄쩍 뛰었고, 결국 둘은 파국을 맞았다.

남편의 이야기 “월급 200만 원에 한 달 보험료 90만 원?”

기가 찰 노릇이다. 한 달에 통장에 찍히는 돈이 200만 원이다. 십년 죽도록 일해서 100만 원이 올랐다. 내 월급 이야기다. 번듯한 직장은 아니지만, 무탈하게 성실히 살았다. 남들처럼 결혼도 하고 아들 딸 낳아서 집 한 채 가져보는 꿈을 가졌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 어느 날 배가 아파 난생 처음 조기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와 보니, 우편함이 가득했다. 아내 앞으로 날아온 것들이라 처음엔 식탁 위에 던져뒀다가 유심히 살펴보니 발신인이 죄다 보험회사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뜯어보고 깜짝 놀랐다.

‘무배당 건강보험, 탄생 플러스, 화재해상보험, 여성시대보험, 저축보험, 연금보험.’ 수없이 많은 보험에 가입되어 있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한 달에 내는 돈만 90만 원이 훌쩍 넘었다. 더 이상한 건 이것만이 아니었다. 절반 가량의 보험은 내 이름으로 가입돼 있었지만, 나머지 절반은 아내의 이모 이름이 아닌가.

그날 저녁 아내를 다그쳤다. 아내는 “보험하는 이모가 부탁해 어쩔 수 없이 들어준 것이고, 돈도 이모가 낸다”고 했다.

“통장 가져와 봐라!”

소리를 버럭 지르니 아내가 찔끔 눈물을 흘리며 장롱에서 통장을 꺼내왔다. 아내 말이 맞는 듯도 했다. 매달 30만 원이 이모 이름으로 우리 통장에 들어왔고, 보험회사는 그 30만 원을 다달이 빼갔다. 어느 통장에선 보험이 해지돼 들어온 1100만 원이 이튿날 이모님 통장으로 이체되기도 했다.

이튿날 회사 일을 빼고 은행에 찾아갔다. 통장 정리를 했더니 이게 무슨 일인가. 돈이 한 푼도 남아있질 않았다. 저축통장에 모아져 있던 돈은 2600만원. 하지만 얼마전 그 돈이 모두 인출되고 없었다. 집에 달려가 아내를 몰아세웠다. 아내는 울며 “생활비가 빠듯해 마이너스 통장을 썼고, 빚이 2600만원쯤 되어서 저금을 해약하고 빚을 갚았다”고 했다. 도대체 계산이 맞질 않았다. 담배도 술도 멀리하며 회사와 집만 오갔다. 월급은 꼬박꼬박 아내에게 송금했는데, 10년간 개미처럼 일한 대가가 겨우 이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아내가 재산을 딴 데 빼돌리지 않고서야 이럴 순 없었다. “어디다 숨겨놨냐. 말해보라”며 밤새 드잡이를 하고 난 다음 날, 아내는 애들을 데리고 짐을 싸 친정으로 가버렸다.

아내의 이야기 “시어머니 등살, 남편의 돈 몸살”

애 둘 키우는데 한두 푼이 드나. 남편이 가져다주는 게 월 1000만 원도 아니고, 고작 200만 원이다. 그런데 10년 동안 못 모았다고 빼돌렸다는 모함이 가당키나 한가. 애들 키운 공은 생각도 않고 “처가에 돈을 빼돌린 게 분명하다”고 몰아세우는 남편이 미워 친정에 간 날, 밤새 펑펑 울었다. 옷 한 벌 못 사입고, 큰아이 학원 한 번 안 보내고, 살아보려 애쓴 내 공은 다 어디로 갔나.

친정 부모님은 “그래도 애들 봐서 살라”며 나를 다독였다. 집으로 돌아가려 나서는 길,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냉랭했다. “오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호통치는 남편.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친정으로 돌아와 하소연을 하니 이번엔 친정 아버지가 나섰다. 하지만 남편은 오히려 기세등등했다. “돈을 빼돌렸으니 빼돌렸다고 한 건데 뭐가 잘못됐느냐”는 거였다.

아이를 봐서라도 살아야지 싶어 집으로 돌아가자, 이번엔 시댁에서 나섰다. 남편이 “아내에게 살림을 맡기니 돈이 안 모인다”며 어머니를 부른 거였다. 어머니는 사사건건 간섭을 했다. 아이 빨래는 손으로 해야 한다, 세탁기를 쓰면 전기료 많이 나온다. 셀 수 없는 잔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어느 날, 둘째 아이가 울어 거실에 나갔더니 어머니가 아이를 울려두고 있었다. “울어야 목청이 커진다”는 거였다. 당황해 아이를 안아 드니, 어머니가 내려놓으라 소리를 질렀다. 화가 치밀었다. “어머니, 제가 낳은 아이에요.” 어머니가 아이를 잡아채려 손을 뻗었다. 뺏겨선 안 된다는 생각에 어머니를 밀쳤고, 허리를 삐끗한 어머니는 병원 신세를 일주일 간 져야했다. 이 일로 남편과 이혼 이야기가 오가면서, 어머니는 결혼 패물을 몰래 숨겨버렸다. “돈까지 빼돌렸는데, 패물마저 줄 수는 없다”는 거였다. 뿐만이 아니었다. 참다못해 짐을 싸 친정으로 가던 날, 어머니는 “이 집안 물건은 하나도 못 가져간다”며 내 가방에 쌌던 옷가지를 죄다 꺼내던졌다. 기저귀 가방이 나뒹굴고 어머니와 승강이를 하면서 어머니 스웨터가 늘어졌다. 어머니는 그 일로 “2만 원짜리 옷이 망가졌다”며 재물손괴죄로 며느리인 나를 경찰에 고소했다.

이혼 책임 50대 50

두 사람의 결혼은 아내가 짐을 싸 친정으로 돌아가 버리면서 파국을 맞았다. 법원에서 바라본 두 사람의 잘못은 50대 50이었다. 남편은 아내를 믿지 못해 어머니를 집안으로 불러들였고, 아내는 과도하게 많은 돈을 보험에 투자한 데다 시어머니를 밀쳐 1주간의 치료를 받게 하는 등 잘못을 했다. 앞서 본 사례에선 이혼의 ‘피해자’인 아내에게 얼마간의 위자료가 인정됐다면, 이번 부부는 양쪽 모두 위자료를 인정받지 못했다. 이혼의 책임이 두 사람 모두에게 공평히 있다고 인정됐기 때문이다. 남편은 아내가 “과소비를 했고, 재산을 숨겼으며, 아침식사를 대접하지 않았고 가출을 했다”며 아내의 잘못을 지적했지만 법원은 남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혼 소송을 하는 1년 사이 아내는 두 아이를 남편에게 돌려보냈다. 경제력이 없는 아내는 두 아이를 키울 여력이 없었다. 남편은 친가의 도움을 받아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 아이와 어린이집에 다니는 작은 아이를 돌보며 회사에 다녔다. 법원은 이런 점을 인정해 양육권과 친권을 남편에게 주도록 했다. 법원은 일을 시작한 아내가 자리를 잡기 전 2년간은 두 아이의 양육비로 매달 40만 원을, 두 아이 모두 학교에 입학해 성인이 될 때까지는 매월 60만 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