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밀과 바꾸는 「유대인 이민세」-소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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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소련정부가 「이스라엘」로 이민을 희망하는 「유대」인에게서 거두어들이던 속칭 「이민세」의 징수를 중지하겠다고 「닉슨」대통령에게 통고했다. 지난해 8월부터 소련 국내법에 따라 실시돼오던 이민세는 소련정부가 「유대」인을 교육하는데 투자했던 비용을 출국할 경우 도로 물고 가도록 강제했던 교육세의 일종이었다.
그러나 이 교육세가 환불하고 출국하기에는 소련내의 「유대」인들 재정 형편으로는 불가능할 정도로 거액이라는 데서 소련 국내외「유대」인들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아 왔다.
이민세의 실시 내용을 보면 사대를 졸업한 교직자가 출국하려면 5천4백30「루블」(약 1백90만 원). 박사학위 소유자는 2만3백40「루블」(약 7백20만 원)을 환불해야만 출국허가가 나도록 돼 있었다.
소련 국내대학 졸업자의 평균 월봉이 1백20∼1백50「루블」(5만원∼6만원)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본다면 이 금액은 6∼7년 동안 봉급을 한 푼 안 쓰고 고스란히 적립해야할 만큼 엄청난 액수다. 따라서 봉급생활자로서 생활해가면서 저축하려면 수십 년이 걸려도 불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재미있는 것은 소련정부가 외국의 후원자가 이민세를 대납해도 좋다고 허용한 사실이다. 소련 안의 50만「유대」인 중 이미 45만 명 가량이 출국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므로 어린이까지 포함하여 1인당 평균 1천「루블」 정도 부담한다고 계산해도 4억5천만 「루블」에 이르러 「달러」로 환산하면 5억「달러」가 넘는 거액이다.
국내에서의 이민세 마련은 거의 불가능하므로 외국에서의 대납이 이루어진다면 5억「달러」이상의 외화를 고스란히 벌어들인다는 계산이다. 만성적인 외화부족으로 허덕이는 소련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이만한 금액은 구미가 당기는 액수다.
그러나 소련정부의 이러한 조처는 실시 초기부터 즉각 「이스라엘」은 물론 세계 곳곳의 「유대」인들로부터 격렬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미국 안의 「유대」인들의 반발은 소련정부를 매우 난처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유대」인 세력은 바로 미국의 의회·행정부와 밀착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유대」계 경제력은 미국 정계의 정치자금원으로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지고있어 미국의 정치인들은 이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 단순한 소련의 국내문제인 이러한 이민세 부과문제를 두고 미국정부가 소련에 압력을 가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지난해 5월 「닉슨」미국대통령이 「모스크바」를 방문, 무더기로 조약·협정을 맺으면서도 무역협정만을 뒤로 미룬 것도 이민세 철폐문제에 소련정부의 양보를 받아내지 못한 탓이었다.
「닉슨」방문에 앞서 당시의 「스탠스」상무장관, 「닉슨」방문 후의 「키신저」보좌관 등의 「모스크바」방문 이면에도 「유대」인 문제가 큰 몫을 차지했으리라는 짐작도 그리 빗나간 것은 아니었다.
미국정부는 무역협정의 체결을 미끼로 「유대」인 이민세 문제에 소련의 양보를 얻어내려고 끈질기게 협상을 벌여왔다. 72년의 유례없는 소맥흉작으로 식량난을 겪는 소련정부에 대한 1억5천만t의 소맥 수출, 「시베리아」개발투자 등 소련정부가 양보하지 않을 수 없는 약점들을 움켜쥐고 버틴 것이다.
결국 서방측에 비해 낙후된 소비경제, 과학기술분야를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협조 없이 향상시킬 능력이 부치는 소련정부는 순전한 「국내문제」에서 끝내 미국정부를 등에 업은 「유대」인들의 압력에 굴복하게되어 「닉슨」대통령에게 교육세 환수를 중지하겠다고 서한으로 통고하게 된 것이다. <김동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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