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情의 역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54호 31면

한국 사회엔 큰 역설이 하나 존재한다. 한국에서 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나를 항상 힘들게 하고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던 역설이다. 올해를 보내며 이 역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를 여러분들께 묻고 싶다. 한국에 친척·친구가 많은 덕에 한국인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들이고, 얼마나 많은 능력을 가진 국민인지 잘 안다. ‘우리는 하나’라는 느낌으로 오랜 세월을 보내며 더 강한 나라가 되고, ‘정’이라는 개념 때문에 한국 속 외국인들이 더 한국을 사랑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역설은 핏줄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다. 이는 한국 사회의 병이다. 세계화니 경제발전이니, 최근 들어 한국 사회가 다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 여기엔 아이로니컬하게도 ‘정’이라는 한국만의 장점이 빠져 있다. 아무리 한국이 발전한다 해도 이 병을 고치지 못한다면 진짜 부유한 나라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혈통과 정 가운데 뭐가 더 중요할까. 입양을 꺼리고 혈통이 다른 가족에 대해 애정이 부족한 경향을 보면 한국인의 ‘정’이라는 게 역설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다음 몇 가지 질문을 스스로 던져 보면 어떨까. 혈통이 다른 가족 혹은 이복형제를 아무런 거리낌없이 친(親)형제자매처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입양을 할 수 있을까? 이따금 입양을 하는 한국인들도 있지만 보기 드물다. 내가 아는 어떤 이들은 편견이 두려워 입양 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최근엔 극단적 사례도 있었다. 새어머니가 의붓딸을 잔인하게 대하는 것도 모자라 야만스러운 방법으로 살인했다는 뉴스였다. 한 명은 울산에서 2년간 8살 의붓딸을 괴롭히다 죽였다. 다른 한 명은 서울에서 10살 딸에게 엄청난 양의 소금을 넣어 죽였다. 까다로운 음식 습관을 고친다는 게 핑계였지만 그 잔인함은 용서받을 수 없을 거다. 물론 극단적 사례다. 하지만 내가 볼 때 더 무서운 건 이런 범행이 사실 더 많이 저질러지고 있으나 다른 사람의 무관심으로 인해 덮어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많은 분과 입양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면 대부분 “난 절대 입양 못해”라고들 한다. 여러 이유를 댄다. 돈·시간 등등. 하지만 결국은 부끄러움과 창피함, 혈통에 대한 집착 때문인 경우가 많다. 해외 선진국에선 정반대다. 사랑을 나눠주고 싶고, 가족을 만들고 싶은 생각에 다른 국가, 다른 민족의 아이들을 입양하기 위해 몇 년을 기다리기도 한다. 한국에선 입양을 하고서도 아이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는 사례마저 있다. 내 친구 중 딸만 다섯을 둔 집이 있다. 아들을 입양했고, 그가 장성해 지금은 30대 초반이지만 자기가 입양된 사실을 아직도 모른다. 그에게도 알 권리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또 하나 이상한 점이다. 왜 내가 봉사활동을 하는 보육원에선 대부분의 자원봉사자가 외국인인 걸까.

한국의 정이라는 게 이런 걸까. 이게 사랑일까. 내 문제가 아니어서 무관심한 걸까. 이 문제는 계속 커질 뿐이다. 슬픈 현실이다.

이 역설을 해결하려면 우리 각자가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이중적인 자세가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어떤 종교나 철학적 배경이 있든 마음의 눈을 활짝 뜨고 우리가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 용기를 갖고 자신의 내면을 솔직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사회의 병을 고칠 수 있고, 문제점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사회는 그 구성원들의 반영이다. 우리가 진정한 정을 갖게 된다면 어떤 위기도 헤쳐갈 수 있는 밝은 미래가 올 거라고 믿는다. 한국인의 정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주는 게 아니라, 그 정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는 것이 돼야 한다. 2014년은 정으로 가득 채워진 밝은 해가 되길 바란다.



수전 리 맥도널드 미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 학사를, 하버드대에서 교육심리학 석사를 받았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한국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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