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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장전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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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국제외교의 회의장 모습은 19세기에 비해 크게 달라졌다. 외교관의 「이미지」부터가 크게 달라진 것이다.
1814년 「나폴레옹」전쟁이 끝나자 「유럽」 각 국의 대표들은 「빈」에 모여 강화회담을 열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회의는 조금도 진척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회의는 춤춘다』는 말까지 생겼었다. 대표들은 매일같이 무도회만 즐겼다. 전패국인 「프랑스」 외교관들도 여기 한몫에 끼였다.
속셈은 모두가 달랐지만 겉으론 서로 아주 상냥한 미소를 나누고 함께 춤과 술로 즐겁게 지냈던 것이다.
이때의 외교관의 이상 상이란 『여우처럼 날쌔고, 구렁이처럼 능글맞고, 지렁이처럼 매끄러운 사람』이었다.
외교관이 『노』라는 부정사를 절대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도 이 무렵부터 생긴 철칙이었다. 곧 외교관이란 『노』라 할 때에도 반드시 『아마도』(may be)라고 얼버무려야 했다. 그러니까 외교관의 『메이·비』는 『노』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가 하면 『예스』라는 말도 피해야 하는 게 외교관이었다. 절대로 언질을 줘서는 안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니까 『메이·비』는 「예스」로도 들리고 「노」로도 들릴 수 있었다.
이 말은 외교관이 그 만큼 노회 해야 했다는 얘기이지만, 또 그만큼 외교관은 어떤 경우에도 예절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말도 된다.
이런 외교관의 「이미지」는 이른바 「파워·폴리틱스」, 곧 힘의 정치가 판치기 시작한 오늘날에 와서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따라서 국제외교무대도 예처럼 매끄럽지가 않다.
그것은 혹은 오늘날의 외교관에게는 예처럼 자유재량권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풀이되기도 한다.
본국 정부의 지시대로 움직이게 되는 것인 만큼 개인적인 친소관계는 아무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자연 멋이 없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동경에서 열리고 있는 「에카페」총회가 그 좋은 본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12일 중공대표는 「론·놀」정부의 대표권은 『불법적』이라면서 「크메르」대표의 연설 때 퇴장했다. 월남대표 때에도 퇴장했다. 모두 본국 정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을 것이다.
그는 또 한국대표의 연설 때에도 퇴장했다. 김 외무는 『중공대표가 내 연설 내용을 알았더라면 퇴장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지만 중공대표로서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세계의 미묘한 움직임으로 봐서 중공으로서도 모든 나라와 적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에 대해서만은 『불합리하며 비정상적』이라는 비교적 온건한 표현을 쓴 것으로도 짐작이 된다.
뿐만 아니라 중공대표단이 모두 퇴장한 다음에도 기자들만은 남아서 열심히 「메모」를 했다한다. 또 「로비」에서 서성거리면서 한국대표의 연설을 TV를 통해 본 중공대표도 있었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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