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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3국의 문화코드를 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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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국과 중국.일본 등 3개국의 문화 상징과 이미지를 비교.분석하는 '한중일 비교문화상징사전'이 출간된다.

개별 국가의 상징사전이 나온 적은 있지만 여러 국가의 상징 및 이미지를 동시에 다룬 사전이 출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사전은 단행본시리즈 형식을 띠게 된다. 예를 들어 소나무.탑 같은 표제어 하나마다 한권의 책으로 엮는 것이다.

특히 유한킴벌리가 원고료 전액을 대고 출판사 생각의 나무가 제작.보급을 책임짐으로써, 기업과 학계가 연계되는 색다른 형식을 취한 것도 눈길을 끈다.

또 필진에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의 전문가들을 참여시키고 원고가 완성되면 한.중.일 3개 국어로 출간하는 한편 영어 번역판도 낼 계획이다.

책임편집인은 이어령 전 이화여대 교수가 맡고 일본과 중국 전문가를 포함해 편집위원진을 구성할 계획이다.

올해엔 우선 사군자, 즉 매화.난초.국화.대나무와 12간지 등을 다룬 모두 열일곱권을 연말까지 발행하며 내년부터는 적어도 매달 평균 한권꼴로 발간한다는 계획이다.

비교문화 상징사전이 다루게 될 항목 수는 아직 제한이 없다. 우선 천.지.인(天.地.人)과 생.물.제(生.物.制)라는 여섯 개의 대항목을 설정하고 그 대항목에 해당하는 소항목들을 찾아나갈 예정이다.

즉 천(天)이라는 대항목 속에는 해.달.별.도깨비.귀신.길흉화복 등이 들어가고 지(地)에는 바위.동굴.고개.명당 등이 속하게 되는 식이다.

이어령씨는 "이번 시도는 10년,20년 이상 계속될 장기적이고 방대한 프로젝트"라며 "현재 3백개 정도의 항목을 뽑아 해당 분야 전문가나 교수들에게 원고를 의뢰하고 있는 중이지만 앞으로 다루게 될 항목이 수천 가지로 늘어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번 시도는 동아시아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있는 한.중.일 3국의 문화 코드를 읽는 작업으로서 유럽연합(EU)처럼 세계가 점점 블록화해가는 추세 속에서 동아시아의 미래 공동체를 위한 중요한 초석이 될 것이라는 게 편집진의 주장이다.

이어령씨는 "대륙의 나라 중국, 해양의 나라 일본, 반도의 나라 한국은 지형학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5천년 이상 공통된 문화적 토양을 향유해 왔다"며 "그러나 같은 문화상징이라도 수용 과정에서 변형과 변용이 일어났고 근대 이후에는 서구화로 인해 그 차이가 현저히 커진 만큼 이 '같음과 다름'을 드러내고 그럼으로써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자는 게 이번 기획의 의도"라고 밝혔다.

유럽의 아날학파가 소금이나 차(茶) 같은 작고 구체적인 것에서 역사 이해의 길을 찾았듯이 주변의 작은 상징들을 통해 동아시아의 역사와 오늘을 이해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군자 중 하나인 매화는 3개국 모두 시.서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했다. 그러나 다루는 방식은 조금씩 달랐다.

한국의 매화 그림은 꽃송이가 중국의 그림처럼 많지 않은데,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성이 어리숙한 것, 완벽하지 않은 것,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중국의 매화 그림은 완전무결한 것, 되도록 큰 것, 빽빽한 것을 선호하는 그들의 성격이 드러나 있다. 반면 일본의 매화도는 한국이나 중국에서처럼 고고함이나 절개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12간지의 하나인 원숭이의 경우 일본에는 '원숭이=이별, 떠남'이라는 상징성이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의미를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서로의 문화상징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앞으로의 문화.경제 공동체 형성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이번 기획이 한 기업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성사될 수 있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어령씨가 지난해 초 사석에서 "동아시아 3국의 문화상징을 비교해 보고 싶다"는 자신의 포부를 밝히면서 "정부나 공공기관이 나서야 하는데 좀체 움직이지 않아 답답하다"고 털어놓았다.

이를 듣고 있던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이 "힘껏 돕겠으니 한번 해보자"고 격려했고 출판사 생각의 나무 박광성 사장도 "이윤이 나지 않는 사업이지만 협조하겠다"고 나서 성사되기에 이르렀다.

이어령씨는 "앞으로 30권만 성공적으로 낸다면 누가 내 뒤를 잇더라도 자체의 동력으로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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