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공개의 저해요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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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8·3조치를 계기로 기업의 자발적인 공개를 기대했던 정부는 이에 대해 업계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자, 강제 공개작업을 서두르고 있는데, 이 문제와 관련해서 증보협회는 주목할 만한 「세미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업계의 전문가들은 기업공개를 위해서는 경영권에 대한 위협, 배당저격, 그리고 기업의 음성적 소비지출이라는 기본적 익로를 타개해 주어야 한다는 전제를 제시했다. 또 경제의 안정이 공개의 기본여건임을 지적하면서 조세상의 우대강화, 제정역할의 축소와 금융역할의 강화, 창업자 이득의 보장, 그리고 증권 및 증권업자의 공신력 제고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의견은 문제의 핵심을 찌른 것으로서 깊이 참고해야 할 사항이다.
솔직히 말하여 오늘의 경제 사회적 여건이 기업공개를 어렵게 하고 있기 때문에 제도상의 많은 특혜가 공개 법인에 주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공개를 망설이고 잇다는 점을 가볍게 보아 넘겨서는 안 된다. 이러한 말할 수 없는 사정이야말로 기업공개 문제를 풀어나가는 핵심이라 하겠는데, 이에 대해서는 사실상 아무런 대책도 마련될 수 없다는 데에 기본적인 애로가 있다.
기업 공개를 저해하는 이 말할 수 없는 핵심문제는 결국 업계와 상국의 솔직한 의견교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특히 고려해야 할 점은 크게 보아 두 가지라 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전문가들이 제기한, 이른바 『공개할 수 없는 음성 비용지출』이고, 다른 하나는 창업자 이득의 노출문제라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는 한 아무리 제도적으로 공개기업을 우대하여도 자발적으로 기업이 공개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사리가 그러하다면 핵심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강제공개를 서두를 때에는 예상 밖의 부작용이 파생될 염려가 없지 않다.
기업주가 공개를 원하지 않는 것은 본질적으로 공개에 따라서 실질손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강제로 공개하는 경우 다음 두 가지 중 한가지 편법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하나는 어차피 공개되어 손실을 보는 것이라면 공개되기 전에 실속을 빼돌려 실질적인 손실을 면하려는 생각이며, 다른 하나는 공개에 응하되 단계적으로 주식을 포기해서 투자 전환을 시도하는 경우이다. 이 어느 경우나 사업의욕을 저해시키는 것이므로 기업공개의 당초 취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물론 강제공개라 하더라도 51%의 독점주주권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므로, 대주주는 기업을 공개한 후에도 종전과 마찬가지로 공개할 수 없는 음성 비용을 지출할 수 있으며 또 창업자 이득을 적절히 회수할 방도도 있기 때문에 공개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관료적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공개되면 공인 회계사의 감사를 받아야 하며 군소 주주들의 장부열람 등을 감수해야하는 것인 만큼 이 경우 감추고자 하는 수자를 덮어둘 수 없는 것이 회계상의 진실임도 또한 명백하다.
확실히 기업 공개를 저해하는 이들 요인은 한국적 풍토의 소산이며, 그러한 병폐가 일소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풍토자체의 정화없이 기업의 공개를 서두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배려해서 신중히 대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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