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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외교공세에 부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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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중공 화해를 발판 삼아 비동맹 중립국에 대한 외교공세를 강화해 오던 북한이 73년에 들면서 더욱 부산스러운 움직임을 보이고있다. 불과 3개월도 안 되는 기간에 11개의 대표·사절단을 파견, 「아프리카」·「유럽」·중동지역 국가를 집중 공격한 것이다. 이 가운데 4개「팀 은 차관급이 인솔했으나 나머지는 현직 장관이거나 장관급 혹은 그 이상의 지위에 있는 사람(강양욱 부주석의 경우)이 이끌었다.
이들이 지금까지 훑은 나라는 모두 16개국에 이른다. 그러나 대부분이 한국정부와 외교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공산국가 내지 친 공적 중립국이며 한국의 외교망과 경제관계의 가능성을 내포한 나라는 「덴마크」·「노르웨이」·「핀란드」의 3개국뿐이었다.

<「모리셔스」와 수교>
전명수(외교 부부장)「팀」이 국교수립에 성공한 「모리셔스」는 한국과 외교관계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지난해 「유엔」에서도 표결에 불참한 나라였다.
하지만 한가지 주목되는 점은 국제정치의 「데탕트」가 본 궤도에 오른 72년 이후 북한과 국교를 수립한 나라의 숫자가 부쩍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물론 전체 숫자면에서 보면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국가가 85개국인데 반해 북한은 47개국(「스리랑카」제외) 밖에 안 된다. 말하자면 북한의 국제적 지위는 도저히 한국에 비견할 수 없는 상태인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47개국 가운데 8개국이 72년 중에 추가되었고 73년에 접어든 이후 북한과 수교한 나라가 5개국에 이른다는 사실에 있다.

<72년 이후부터 적극>
참고삼아 수교국의 증가 추세를 보면 65, 66년이 각각 l개국, 67, 68, 69년은 해마다 2개국씩이었으며, 70년 3개국, 71년은 4개국이었다. 따라서 72년 이후의 추세는 경계할 만한 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이처럼 외교망의 확장에 부심하는 것은 국제법상의 국가·정부승인을 받음으로써 국제무대에서의 지위를 높이고 이를 대「유엔」전략에 전용하기 위해서 이다. 이와 같은 목적을 위해 북한은 두 가지 점에서 종래의 외교정책을 수정했다.

<외교정책 대폭 수정>
수교 대상국에 대한 제한의 완화와 「유엔」의 권위를 어느 정도 인정한 것이 그것이다.
북한은 70년까지만 해도 한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와는 수교한 적이 거의 없었다. 이것은 한국정부의 「할슈타인」원칙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당시 북한과 국교를 맺고있던 21개국 가운데 70년 연말에 수교한 적도「기니」만이 유일한 예외였다.
그러던 것이 국제질서의 재편기에 접어든 71년부터는 상황이 일변했다. 새로 외교관계를 수락한 19개국 중 「유고」「오트볼타」「파키스탄」의 3개국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한국정부와 국교를 맺고있는 나라였던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중공처럼 「유일 합법정부」나 「영사권」의 인정을 수교의 조건으로 내세운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한국 대사관과의 공존을 적극 받아들임으로써 「한민족·두 정부」를 기정사실화 하려고 노력했다.
지난해부터 북한이「유엔」의 권능을 부분적으로 인정한 것은 말하자면 이와 같은 외교노선의 부산물이라 수 있다.
즉 그들은 「유엔」이 한반도 문제를 토의할 권한이나 자격이 없다』(62년10월·67년1월 김일성)던 종래의 주장 대신 『「유엔」이 국제기구임은 사실이며 누구도 이를 부인하려 하지는 않는다』고 대폭 후퇴한 것이다.
북한이 이처럼 태도를 완화한 것은 기왕에 확장한 외교망과 탈냉전시대의 국제정치 분위기를 최대한으로 이용하려는 속셈 때문인 것 같다.
이를테면 동서독이 「유엔」에 동시 가입할 경우 그 상승기류에 편승해서 남북한 동시 조정안을 통과시키고 이것을 발판 삼아 주한「유엔」군 철수안을 가결시키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엔」관계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와 같은 계산이 별로 가능성이 없다고 평가한다.

<동시 유엔가입 계산>
설사 이뤄진다 하더라도 남북한의 대화가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한국정부가 그러한 성과에 만족을 표시할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것이 이들의 견해이다.
어쨌든 북한은 미국의 대 중공화해 정책을 「양면전술」로서 인식하면서 새로운 「패턴」의 외교공세에 나선 것은 사실이다. 또 이들이 「힘의 우위」와 「화해의 추구」라는 일면간의 모순관계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하는 점도 이미 명백히 밝혀졌다.
따라서 남은 문제는 이 새로운 전술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대응책의 작성이다. 공진태「팀」이 훑어간 「덴마크」와 「핀란드」·「노르웨이」에서의 반응은 이와 같은 느낌을 더욱 강하게 해준다. <홍사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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