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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이방인 미군포로|달라진 세상·낯선 고향에 쉽게 적응할 것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월남평화협상 과정에서 시종일관 미국 측이 제기한 큰 정치적 쟁점의 하나였던 미군전쟁포로가 휴전협정에 명시된 약조대로 착착 귀향하고 있다. 휴전협정 제7조는 미군철수 시한과 마찬가지로 조인 후 60일 이내에 상호 포로교환을 모두 완료하도록 되어있다.
별다른 차질이 없는 한 지난 12일 미군포로 제 1진 1백43명이 석방된 데 뒤이어 포로명단에 확인된 총5백62명이 오는 3월말까지는 미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로써 미 국민은 승리도 패배도 아닌, 그들 역사상 최장의 이 기묘한 전쟁에 종지부가 찍혔다는 사실을 피부로 실감하게 되었다.
또 이들의 귀환은 월남전 전 과정을 통해 미국의 마지막 명분이었던 『포로석방문제』를 표면상 완결시켜줌으로써 월남전에서 받은 미 국민의 깊은 상처를 어느 정도 위무해 주는 역할도 했다.
미군포로문제는 미국의 월남정책 전반에 걸쳐 시종 압력구실을 해온 월남전의 특이한 산물이다. 그런 만큼 이들의 인수작전은 세심하고도 엄격하게 수행되었다.
이번 귀향포로들은 평균 억류기간이 4년으로써, 특히 장교비율이 전례 없이 높은 특징을 지니고있다.
이른바 『귀향작전』이라고 명명된 이들의 인수를 위해 미군당국은 「필리핀」의 「클라크」공군기지에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한국동란에서의 경험을 살려 이들이 미국사회에 재 적응하는데 차질을 줄이기 위해 당국은 취재기자를 비롯, 일반인의 접근을 금지시킨 채 정신과의사·목사까지 동원했다.
또 이들이 돌아와 부닥칠 세상물정의 변화를 알려주기 위해 당국은 속어사전을 마련하는가 하면「닉슨」의 북경·「모스크바」방문, 「아폴로」달 착륙등을 별도 「브리핑」하기도 했다.
막상 돌아온 포로들은 당국의 세심한 준비가 무색할 정도로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했다.
그러나 비록 월남전이 끝나고 미군포로가 돌아왔다고는 하지만 미국의 여론이 2차 대전처럼 미국이 승리했을 때와는 달리 이등의 귀향을 꼭 「진정한」혹은 「값있는」희생으로만 봐주질 않음으로써 앞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될 것 같다. 많은 귀환포로들이 가족과의 열렬한 「키스」와 포옹이 끝나고 난 뒤 가장먼저 알고 싶어한 것은 『누가 전쟁에서 이겼느냐』는 것이었다. 여기에 대해 정부관리들은『「사이공」정부는 패배하지 않았다. 또 월맹도 이기지 못했다』고 아리송하게 대답했다.
여기에 미국이 두고두고 처리해야할 앞으로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닉슨」은 일시적인 미 국민의 환영 「무드」와 월남휴전자체의 균형을 유지시키는 길은 『그들(포로)을 영웅처럼 칭송해서도 안되며, 그들을 학대해서도 안 된다』고 표현했다.
앞으로 귀향포로들이 직면할 가정생활을 비롯한 문화적「쇼크는 차츰 문제가 확대될 수도 있다. 포로들 중에는 돌아와 보니 이미 부인이 이혼을 선언하고 떠나버린 사람도 있고, 그 동안 저축된「보너스」로 인해 15만4천「달러」의 현금을 손에 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이들이 두고두고 속앓이 할 문화적 「쇼크」는 미국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있다.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생소하게만 보일 것이다. 전장에서 그토록 즐겨 찾던 「루크」지와 「라이프」지가 모습을 감추었는가 하면 「미니·스커트」와「핫·팬츠」도 사라져 가고 있다.
그뿐인가, 「로버트·케네디」가 흉탄에 쓰러졌는가 하면 줄기차게 적으로만 알고있던 중공이 「유엔」에 가입, 「뉴요크」에 진을 치고 있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도 이미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 아니다.
전문의들은 이 같은 환경의 격변이 불치의 병을 유발시킬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다. 예컨대 극도의 「스트레스」로 일관된 「하노이·힐트」(포로수용소)의 밀폐된 생활에서 갑작스럽게 개방사회로 옮겨지면 감각상실증에 걸리기 쉽다는 것이다. 더욱이 일부 미국사회는 포로들을 전쟁의 영웅으로 보기보다는 그들을 가장 불행했던 전쟁의 생생한 추억물로 부려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포로들은 스스로 값진 희생을 했다기 보다는 명분 없는 「놀음의 꼭둑각시」였음을 지각할 것이라고 미국의「칼럼니스트」들은 지적하고있다.
이와 같은 악순환이 유발할 사회병리학적인 불씨는 미국의 월남전개입에 관한 시비를 보다 오래 끌게 한 것 같기도 하다.<김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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