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유괴범과 뺑소니 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죄를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죄를 지은 인간에 대한 관용과 구원을 의미한다.
사회기구가 복잡해질수록 범죄의 종류가 늘어나고 또 그 수법이 잔인해지는 것은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큰 고뇌의 하나이다. 그래서 사람 자체는 미워하지 않되 죄의 부에 따라서는 이를 엄격하게 따지지 않을 수 없는 소이가 있다.
숱한 사회적 범죄의 범주 가운데서도 미성년자 유괴나 뺑소니로 불리는 역사상·유기만큼 생명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범죄도 드물다.
우리 나라에서도, 어린이 유괴가 선진국 못지 않게 급속도로 늘어가고 있어 큰 문제거리지만 특히 뺑소니 운전사들에 의한 사상자 유기가 격증하고 있는 것은 인명경시의 병폐를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치부라 아니 할 수 없다.
마침 정부는 지난20일의 비상 국무회의에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개정하여 유괴·역살 유기에 대해 최고사형에까지 처하도록 했다고 전한다.
즉 미성년자 유괴에 대해서는 종래 10년 이하의 징역을 규정한데 그쳤던 것을 살해목적의 유괴와 치사에 대해 최고 사형으로 했고, 도주차량운전자의 경우는 사고발생 보고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인명피해의 정도와 피해자를 옮긴 여부를 가려서, 최고사형·무기·10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범죄에 대하여 형량을 가중케 한 조치는 범죄의 질에 따라 형죄의 경중을 가린다는 법 운영의 합리화 일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어린이유괴와 뺑소니운전사를 미워하고 규탄하는 국민의 도의적 감정의 직접적인 반영이라 할 것이다.
뺑소니를 예로 들어보자. 아마 처음부터 가해를 목적으로 하여 인명사고를 내는 운전자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인명에 관계된 사고를 냈을 때 현장에서 피해자를 살피고 보고하느냐, 혹은 뺑소니를 치느냐 하는 순간의 선택이 곧 범죄의 성격을 판가름한다. 중요한 것은 아무런 망설임이나 두려움 없이 그 순간의 태도를 스스로 결정할 줄 아는 운전자의 도덕적 판단이며, 이것이 곧 그 사회가 이룩해야할「모럴·레벨」을 좌우하기도 한다.
악질적인 범죄에 대해 꼭 사형 등 중벌로 대처해야 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물론 논의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철부지 어린이를 범죄의 수단으로 유괴하는 행위와 사람을 치어 빈사상태에 놓아둔 채 뺑소니 치는 운전사에 대해 엄벌주의로써 임하는 것은 세계공통의 추세이기도 하다. 법의 심판의 무서움을 깊이 인식시키고, 이 같은 범죄발생의 예방을 위해서는 이보다 효과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 우리 사회전체가 깊이 성찰해야 할 일은 법이란 건전한 도덕적 규범을 바탕으로 삼고 있어야 한다는 일반론 이상으로 지니고 있는 문제의 특수성이다.
인간성의 본질을 규정하는 가장 근원적인 가치는 바로 사람의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승복과 외경심에 있다. 이것을 떠나서는 어떤 법체계나 도덕률도 무의미한 것이다. 어린이의 목숨을 미끼로 하여 금품을 요구한다든지, 사람을 치어 놓고 도주하거나 심지어 시체를 몰래 버린다든지 하는 범죄행위야말로 법의처벌 이전에 인간으로서 용서받기 어려운 것이다.
도덕심의 앙양이 한낱 공소한 부르짖음으로만 그쳐서는 안 되겠다. 특정범죄에 대한 가속처벌을 계기로, 인명 경시풍조를 일소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한번 깨닫는 도덕적 각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