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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비니」성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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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느 종교에나 성지가 있다. 기독교는 「예루살렘」, 「이슬람」교는 「메카」를 각각 성지로 여기고있다.
불교에는 성지가 여러 곳 있다.「히말라야」의 남쪽 기슭, 옛 「키필라」성이 있던 「룸비니」성지,「벵골」지방의 북쪽에 있는 「부다가야」, 왕사성이 있는 「라지길」과「사르나트」,그리고 「쿠시나가라」가 바로 그 성지들이다
모두 석존의 사대사 곧 불연·강경성도·초전법론·열반 등이 있던 곳이다. 그러나 그중 하나도 제대로 보존되어있는 곳은 없다.
석가는 「부다가야」에 있는 보리수 아래 마련한 금강좌에 앉아서 7주일만에 성도 했다 한다.
7세기중엽에 삼장법사가 이곳을 찾았을 때 금강좌는 흙 속에 묻혀있었다. 그는 실망 끝에 몸을 땅위에 내던지며 슬피 울었다는 얘기까지 남기고있다.
보리수도 지금은 둥치 지름이 약1 「미터」, 높이10여 「미터」의 대목이지만 잎은 시들어 버렸다.

<사역기>에는『보리수의 남문 외에 대타있어 주7백여 보…』라 적혀있는데 그 못도 그대로 남아있다. 그러나 거울처럼 맑다던 물은 그저 탁하기만 하다.
왕사성도 <사역기>에 기록된 것을 보면 구성은 그 둘레가 약40㎞, 신성은 구성의 북문에서 1㎞떨어진 곳에 있으며, 둘레는 약6㎞나 된다고 기록돼있다.
불타는 37세 때 이곳에서 설법을 했었다. 이때 불교에 귀의한 「빈비사라」왕이 「죽림점사」라는 여람을 기증했다.
그러나 삼장법사가 이곳을 찾았을 때에는 이미 경도가 된지 오래였다. 다만 설법을 들으려고 「빈비사라」왕이 우차로. 다녔다는 길만이 옛 모습을 간신히 보여주고 있었을 뿐이다.
「사르나트」는 「힌두」교의 성지 「배나레스」에서 11㎞떨어진 곳에 있는 불적이다.
불타가 「부다가야」에서 성도한 후 자기 앞을 떠난 5명의 비구에게 초전법론의 첫 설법을 한 곳이다.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곳이기는 하지만, 폐허이기는 마찬가지다. 「아쇼카」왕 때의 석주가 두 동강이 난 채 땅위에 마구 굴러있는 것이다.
지난 64년 무렵 인도정부에서는 불타 생연 2천6백년을 기념해서 신왕사성의 유적발굴을 벌였었다.
그것이 어느 만큼 끝을 맺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네팔」에서는 또 「룸비니」개발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나라 불교계에서도 여기 협조한바 있었던가보다. 지난16일 「네팔」에서 감사의 뜻으로 순금불상이 기증되어 왔다.
「네팔」국민은 불교이전에는 「라마」교를 믿고 있었으며, 불교가 퍼진 다음에도 「힌두」교의 영향이 여전히 짙다. 따라서 그 불상은 우리네가 흔히 보아오던 것과는 약간 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상에 담긴 마음만은 「네팔」이나 우리네나 조금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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