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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외상거래 성행|학교주변 문방구·빵집등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어린이들사이에 외상버릇이 생겨났다. 단골가게는 학교주변의 문방구점 만화가게 빵집등. 단골가게에 장부까지 비치해두고 그들이 주로 사는 학용품값과 군것질값을 치부해둔자. 어린이들이 일찍이 배워서는안될 비뚤어진 상거래를 익히고 있는 것이다. 이를두고 교육계인사들은 『어린이들에게 낭비벽을 조장하고 무책임한 생활습성을 기르는 새로운 유해환경으로 본다』고 걱정하고 학교당국이 책임지고 그런버릇을 고쳐줘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학교앞주변에 밀집되어있는 업소들은 한가게에 평균20명의 외상거래꼬마들을 단골로두고 최저 10원짜리에서 최고 3천5백원까지의 외상을 준곳도있었다.
서울Y국민학교앞에있는 J문방구점(주인최재진·32)의 경우 작년3월부터 단골로 드나드는 어린이 30여명의 이름이적힌 외상장부를 두고있었다. 최씨의 장부에적힌 단골꼬마들은 대부분 1학년∼4학년사이의 저학년들. 이들은 주로 장갑·단어장·색연필·명찰·붓·바늘등 10∼20원짜리 학용품을 외상으로 가져간것으로 적혀있었다.
문방구주인 최씨는 어린이들 가운데는 집에서받은 학용품값으로 군것질을하고 그대신 학용품값은 외상으로 달아놓는 일이 많다고말했다.
최씨는 어린이들에게 외상을 주는것이 나쁜줄 알지만 다른 가게서 모두 외상을 주면서 어린이들을 끌어들이기 때문에 자신도 하는수 없이 외상을 해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외상거래를 시작한 어린이 가운데는 자전거 빌어 타는곳, 「미니」 당구장등에서 노는데 빠져 시간을 넘기다가 초과 요금등을 외상 장부에 적어두고 돌아가는경우도 있었다.
상인들은 외상 장부에 이름·학년·반·집전화번호·지출 예정일등을 적어놓고 돈이 많이 밀린 어린이들에게는 친구를 가장한 어린 종업원을시켜 독촉, 전화를 걸거나 부모들에게 알리겠다고 욱박지르는 사례도 있었다.
서울S국민학교앞 S문방구주인 정길룡씨(34)에 따르면 외상을 주었던 김모군(11·4학년)은 지불약속날짜가 지나도록 돈을 못갚자 가계앞을 피해 뒷산을 넘어 등교하는 경우도 보았다고 했다.
정씨는 뒷산에서 기다리다 김군을 잡아 『다시는 외상을 지지않겠다』는 약속을받고 외상값 2백50원을 안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학부형 김정애씨(47·서울용산구동부이촌동)는 국민학교 4학년에 다니는 아들이 이웃 「S어린이집」에서 3천원의 외상을지고 독촉에 시달리다못해 울면서 실토하는것을 보고 외상값을 갚아준일이 있다면서 이같은 학교앞 가게를 정화해주도록 조치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아들은 자전거포·「미니」당구장·만화가게를 겸하고있는 이가게에서 하교길에 잠깐씩들러 1시간에 1백원씩주고 자전거를 빌어타거나 시간당 20원짜리 당구를 시간가는줄 모르고 치다가 시간이넘어 초과요금을 외상장부에 적어둔것이 6개월째 쌓이면서 3천원이 됐다는것.
서울서대문구 B국민교3년 김모군(10)은 학교앞빵가게와 문방구에 달아놓은 외상값 2천원을 갚기위해 지난해10월 담임선생의 책상서랍에서 돈을 훔쳤다가 적발돼 학교에서 문제가 되기까지했다.
J문방구점주인 최씨는 지난해10월 학용품과 과자값 1천원어치의 외상을졌던 박모군(10·3년)이 독촉을 심하게하자 학교를 나오지않아 학교측이 조사에 나선일도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업자들은 외상거래가 나쁜줄알지만 경쟁적으로 다른가게에서 외상거래로 어린이들을 끌고있어 외상거래를 그만둘수없다고 말하고 있다.
▲서울은석국민교 생활지도교사 김상태씨의말=어린이들이 외상거래를 할 수 있는 가장 큰원인은 학교주위에 몰려있는 문방구·만화가게·구멍가게등에서 과당경쟁을 하기 때문이다. 어떤곳에서는 주인이 스스로 외상을 터주기도하고 또 어린이들도 다른가게에서 외상을 주고있으니 외상을 달라고 요구하는경우도 있다.
▲이화여대 학생생활지도 연구소장 황응연교수=놀라운일이다. 성인사회에 만연된 월부판매·외상거래등 수입과 지출의 「밸런스」를 무시한 구매습관이 동심의 세계에까지 파급된 현상이다. 어릴때부터 외상을 주어 누군가가 갚아줄것이라는 사고방식을 기른다면 성인이되어서도 자율성을 찾지못하게 될 것이다. 학용품등은 학교안에서 파는것이 염가판매도되고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나쁜점도 막을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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