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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서소문 포럼

소화제로 위궤양 고치자는 미국의 북핵 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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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남정호
중앙SUNDAY 국제선임기자

수년 전 겨울, 이란에서 온 지인을 만났다. 얼굴이 새까맣길래 “사막에서 고생 많았다”고 위로했더니 웬걸, “스키장에서 탔다”는 거다. 그는 “이란이라면 온통 사막인 열사의 나라로 착각하나 눈도 오고 최고급 스키장도 많다”며 웃었다. 무지함이 창피해 즉시 뒤져봤다. 그랬더니 이란은 사계절이 뚜렷한 데다 테헤란 근처 4500m급 알버츠 산맥엔 세계 10대 슬로프 중 하나인 디진 스키장이 있단다. 몰랐던 건 이뿐이 아니었다. 남녀차별이 심하다지만 명문 테헤란대엔 여학생이 더 많다. 한국과 관련 없을 듯하나 태권도 인구 120만 명, 한국에 이어 세계 2위다. 2011년 경주 세계태권도대회에선 종주국 한국을 꺾고 우승까지 했다. 대장금 등 한류 드라마가 최고 인기다.

 이 나라 얘기를 꺼낸 건 미국이 북핵이란 고차방정식을 이란식 해법으로 풀겠다고 해서다. 이달 초 아시아를 순방한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 “이란 사례를 북한에 적용하자”고 했다. 이란식 해법이 뭔가. 경제제재로 핵 야욕에 불타는 나라의 목을 조여 포기토록 하는 거다. 5년간에 걸친 팍팍한 경제제재에 이란은 지난달 말 고농축 우라늄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대신 국제사회는 대이란 경제제재를 완화하기로 했다. 그러니 이란처럼 북한을 세게 조이면 핵무기를 버릴 거라는 게 미국 측 논리다.

 과연 그런가. 경제제재가 기록에 처음 등장한 건 BC 432년, 아테네가 옆 나라 메가라에서 세 여자를 납치하자 수입금지를 단행한 게 효시다. 이후 나폴레옹의 대륙봉쇄 등 굵직한 경제제재만도 수백 건에 이른다. 그러나 효과를 거둔 건 극히 적다. 115개 케이스를 연구한 시카고대 로버트 파이프 교수에 따르면 겨우 5%가 성공했다.

 그나마 경제제재가 성공하려면 조건이 따른다. 우선 대중이든 지도층이든 압박받는 쪽 고통이 커야 한다. 그 고통이 핵 보유와 같은 특정 정책에서 비롯되는 이익을 넘어서야 약발이 있다. 주목할 건 압박이 거셀수록 내부적 단결은 딴딴해진다는 거다. 이유야 어떻든 아픔을 주는 무리에겐 화나기 마련이다.

 이런 원칙을 이란과 북한에 대보자. 먼저 이란은 모든 정보가 차단된 무소불위의 독재국가가 아니다. 누구든 외유가 가능하다. 해외유학생만 3만8000여 명이다. 웬만한 집엔 위성안테나가 다 달려 할리우드 영화나 서방 뉴스도 여과 없이 본다. 인터넷도 오케이다. 두바이에 세워진 외국회사 3분의 1이 이란인 소유다. 나라 밖 세상이 어찌 도는지 훤하단 얘기다. 경제제재에 따른 고통은 심각했다. 이란 리알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물가가 폭등했다. 이란식 빵 바바리의 값은 5배 이상 뛰었다. 이란은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이 세계 4위, 2위다. 국민 모두 경제제재가 풀리면 엄청난 외화 수익이 쏟아진다는 걸 잘 안다. 종교적 독재에도 불구하고 세속 정권은 민주적 선거로 바뀐다. 이번에 정책이 바뀐 것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전 대통령의 강경노선에 불만을 품은 이란인들이 선거를 통해 온건파 하산 로하니를 새 지도자로 뽑은 덕이다.

 반면 북한은 추가적인 경제제재가 북녘 주민과 김정은 일파에게 얼마나 고통을 줄지 모르겠지만 그런다고 핵무기를 포기할 턱이 없다. 몇 년 전 미국 지상파에서 북한 르포를 방영한 적이 있다. 중학생 소녀가 등장해 “우린 김정일 동지 덕에 우유를 하루 한 잔이나 마신다”고 자랑해 가슴이 미어졌다. 변했다지만 여전히 대다수 북한 주민은 자신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사는지 깜깜하다. 알아도 선거로 정권이 교체되고 그래서 정책이 바뀌진 않는다. 게다가 북한은 이미 핵폭탄을 보유한 반면 이란은 개발 중이다. 만든 걸 없애는 건 개발 중단보다 훨씬 밑지는 장사로 느낄 게다.

  그런데도 이란에서 경제제재가 먹혔으니 북한도 통할 거라 믿는 건 무슨 연유인가. 배 아픈 데 소화제가 들었으니 위궤양도 고칠 거라 우기는 것과 매일반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원하는 게 맞느냐”는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이런 의심을 없애려면 ‘북핵의 이란식 해법’처럼 물정 모르는 얘기는 걷어치워야 한다.

남정호 중앙SUNDAY 국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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