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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싸우던 여야가 합작해 끼워넣은 거품예산 9조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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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김경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새누리당 김기현 정책위의장은 지역구가 울산(남구을)이다. 그는 15일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농담조로 이런 말을 했다.

 “이상득 전 의원이 활동하던 18대 국회에선 포항~울산 국도 확장 예산을 ‘형님(이 전 의원 지칭) 예산’이라고 하더니 19대에선 ‘울산예산’이라고 하더라….”

 정권이 이명박정부에서 박근혜정부로 바뀌자 국회 주변에선 해당 공사의 예산을 ‘포항예산’이 아니라 여당 실세인 김 의장의 지역구를 따라 ‘울산예산’이라 부른다는 뜻이다.

 2011년도에 총 1000억원이 책정됐던 이 사업의 내년도 예산은 국회 상임위원회(국토위) 단계에서 정부가 제출한 1001억9000만원보다 798억원이 늘어났다. 총 1799억9000만원이 됐다.

 김 의장은 “낭비성 예산이나 선심성 예산이 나쁘다는 건 공감하지만 ‘쪽지 예산’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공무원은 자기 마음에 드는 건 하고 마음에 안 드는 건 안 하니까 지역 현안을 잘 아는 국회의원들이 민심을 대변해 예산을 요구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김 의장 말대로 꼭 필요한 지역 사업 예산이라면 당연히 증액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국회에서 늘려놓은 지역예산의 규모를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국정원 댓글 사건 등으로 싸우던 여야 의원들이 각 상임위에서 정부 예산을 심사하며 증액시킨 예산은 9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국민(4900만 명) 한 사람이 18만원씩 내야 마련될 수 있는 돈이다.

 1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각 상임위의 심사자료에 따르면 전체 15개 상임위 가운데 지역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많은 국토교통위가 가장 많은 2조2300억원의 증액을 요구했다. 예컨대 수원역 서측 환승센터 연결도로 예산은 당초 정부안에는 없었으나 국토위 심사 과정에서 32억5000만원이 새로 생겼다. 전남 보성~임성리 철도건설 사업은 당초 정부 예산안이 2억원에 불과했으나 100배(202억원)가 늘어났다. 이런 식으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가 1조1200억원을 늘린 것을 비롯해 안전행정위(6900억원), 산업자원통상위(5400억원), 환경노동위(5200억원) 등이 예산의 막대한 증액을 요구했다.

 김 의장 말대로 이렇게 늘어난 9조원이 모두 필요한 지역예산이었을까. 여기에 거품이 없단 얘기인가. 결코 없다곤 못할 것이다. 9조원이 거품인지 아닌지 판단할 시간조차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야가 예결위의 예산안 심사를 끝내겠다고 약속한 날짜가 16일이다. 15일로 딱 하루를 남겨두고 있다. 그때까지 국회는 무슨 수로 9조원에 낀 거품을 걷어낼 것인가.

김경진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