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종의 경범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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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법의 정체란 어느 것이나 꾀 아리송하다. 보이는 것도 같고 안 보이는 것도 같으니 말이다.
한 예로 우리는 누가 뭐라 하지 않더라도 좌측 통행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게 마치 올바른 시민 도덕이나 되는 것처럼 여기고 있다.
그렇지만 사실은 『보행자는 보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도로에 있어서는 도로의 좌측을 통행해야 한다』는 도로 교통법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우측 통행을 한다는 것은 법을 어기는 일이나 다름없다. 그렇다고 경관에 들키면 꼭 벌을 받게 되느냐 하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경우에 따라서 주의로 끝날 수도 있고, 아니면 벌금 또는 과료의 벌을 받을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매우 애매한 얘기다. 더욱 법의 정체가 모호해지는 이런 경우도 있다.
차내나 공공 장소에 앉아 있는 「미니·스커트」차림 여성의 허벅지를 아무리 빤히 쳐다봐도 죄가 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물리적인 힘이 조금도 가해지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니·스커트」쪽에 죄가 더 커진다. 외설적인 심정을 남성에게 불러일으키게 했다는 뜻에서는 물론 아니다. 도발적인 「미니·스커트」를 입는다는 그 자체가 일종의 외설 행위나 다름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법이란 매우 까다로운 거라는 느낌도 든다. 심리적인 외설성과 행위로서의 외설성을 매우 명백하게 가려내고 있으니 말이다.
내무부는 경범죄 처벌 대상을 47종에서 56종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각종 퇴폐 풍조와 반사회적 행위를 보다 강력히 다스리기 위해서라 한다.
길가의 휴지 버리기서부터 술 먹고 떠드는 일까지 모두 범죄가 된 셈이다. 이제부터는 말썽 많던 장발족은 물론이요, 초 「미니·스커트」도 「법」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장발이며 무릎 위 어디까지의 「미니·스커트」가 허용되는 것인지를 분명히 가릴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법 운용자의 재량이 문제된다.
이를테면 보행 위반자를 그냥 훈방할 수도 있는 것처럼 장발족에게 알밤하나 먹이는 것쯤으로 끝낼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에 어떤 법이라도 엄격히 지켜야만 하는 것이라면 위반자를 눈감아 주는 경관도 법을 어기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고 너무 법에만 매달리게 만하면 자칫 시민의 권리는 푸대접을 받고 법제정의 본래의 목적에서 일탈하게 되는 수도 있다.
최근에 발표된 바에 의하면 지난 한햇동안 서울 시민 14명에 한명 꼴로 즉결 재판을 받았다. 엄청난 숫자이다. 앞으로는 더욱 늘게 틀림없다. 재판이 졸속에 치우치고 경관의 재량이 좁아질 위험은 더욱 커진다. 그렇다고 법의 정체가 조금이라도 더 분명해진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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