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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 2년만에 수갑차고 귀국|미 「반 문화」의 기수 「티모디·리어리」|【워싱턴=김영희 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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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히피」라고 통칭되는 미국의 반 문화 (카운터·컬처) 운동은 2개의 물줄기가 합쳐서 이루는 강물에 비유할 수 있다. 하나의 줄기는 50년대 중반에 한 무리의 작가, 예술가들이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한 서해안 지방에서 일으킨 「비트」 운동이다. 「비트」족들의 대표적인 생활 양식은 「빈곤의 찬미」였고 그들은 「블루·진스」 (청바지)를 입고 「샌들」을 신고 넝마 조각 같은 담요를 덮고 오막집에서 살면서 빈곤의 찬미를 실천에 옮겼다.
그들은 흑인 「재즈」 음악을 즐기고 동방의 비교와 「프랑스」의 실존 철학에 심취했다. 다른 하나의 흐름은 60년대 초기에 등장하여 「비트」에 합류한 「환각제 문화」(트럭·컬처)다.
LSD와 「마리화나」같은 환각제는 심리학자로서 이 나라 반문화 운동의 이론적, 실천적 지도자로 군림한 「티모디·리어리」 박사와 반문화적인 시인「앨런·긴즈버그」에 의하여 수백만명의 젊은이들에게 보급되었다.
60년대 반체제 운동의 사도로서 「캠퍼스의 영웅」으로 군림하던 「티모디·리어리」가 1월18일 두 손에 수갑이 차인 채 「아프가니스탄」에서 압송되어와 2년만에 다시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그는 70년9월 마약 소지, 보급을 비롯한 19개 죄목으로 「캘리포니아」주의 「샌·루이스·오비스포」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해외로 탈출하는데 성공, 「아프리카」「스위스」 「오스트리아」 「레바논」 등을 유랑하면서 「환각제 문화」운동을 계속하다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 정부의 마약 단속반에 걸려 본국으로 압송되었다.
「리어리」는 1920년 「매서추세츠」주 「스프링필드」에서 출생하여 「홀리·크로스」 대학 중퇴, 「웨스트포인트」 육사 중퇴, 「앨라배마」 대학 퇴학 등의 이단자적인 길을 걸은 끝에 2차 대전 때는 심리학 장교로 입대했다. 그는 결국 「버클리」의 「캘리포니아」대학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거기서 강의를 하다가 「하버드」로 옮겼다. 63년 그는 학생들을 상대로 한 환각제 찬미, 보급 때문에 「하버드」에서 파면된 뒤 본격적으로 「반문화 포교」에 나서 50년대의 「비트」와 60년대의 LSD를 「히피」 운동으로 통합했다.
「리어리」의 심리학은 쾌락주의의 심리학이다. 「리어리」는 「오토메이션」이 낳은 과다한 여가 (레저)를 「섹스」의 탐험, 「거리의 정치」, 환각제 같은 것으로 흡수하고 젊은이들을 그들 부모의 세대를 구속한 사회의 상벌 제도로부터 해방하는 것이 쾌락주의 심리학의 사명이라고 주장한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반체제 운동은 퇴조를 보였다.
「닉슨」이 행정부의 「법과 질서」 노선이 원인의 하나이기도 하다.
수갑 찬 몸으로나마 「리어리」는 이제 「옛 고장」으로 돌아왔는데 그의 귀향이 「법과 질서」 우세의 현상을 뒤집지는 못하게 되겠기만 홀연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그의 모습을 보고 「버클리」·「캘리포니아」 같은 서해안 일대의 젊은이들이 술렁댈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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