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의 정치 철학 탈바꿈|【워싱턴=김영희 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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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닉슨」 대통령은 「드골」을 이상적 정치가의 「모델」로 삼아 왔다. 「닉슨」은 「드골」이 「알제리」 전쟁을 4년만에 해결한 것처럼 자신의 월남 전쟁 해결도 4년 정도 걸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것은 어지간히 맞아 떨어졌다.
「닉슨」이 69년 대통령에 당선, 최초의 외국 방문국으로 「프랑스」를 택하고, 그때 「드골」을 지나치게 찬양하여 오히려 「드골」을 멋적게 만든 것도 그의 뜨거운 「드골」열을 반영한 것이다.
「닉슨」의 통치 「스타일」도 「드골」을 닮아 간다. 내정보다 외교에 관심과 자신이 더 많고 「유럽」 통합 같은 이상보다는 강력한 주권 국가의 유지를 신봉하고 내각이나 여론을 무시, 공식 기자 회견 같은 것은 1년에 두번 정도로 그치고 향리 「콜롱베 레되제글리즈」에서 명상하는 시간을 많이 가진 「드골」을 닮아 「닉슨」 은 곧잘 「캠프 데이비드」산장으로 피신한다. 『미국은 「프랑스」 가 아니다.
「닉슨」은 「드골」 일수 없다』는 비난의 소리는 「닉슨」의 귓전을 스쳐갈 뿐이다.
그런 「닉슨」에게 최근 「개종」의 징조가 나타났다. 「드골」구에서 「디즈레일리」교로. 「플로리다」 남부 백악관으로 갈 때 「디즈레일리」 전기를 끼고 가더니 작년 11월 회견에서 마침내 자신의 노선을 「디즈레일리」식 보수주의에 가깝다고 말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닉슨」의 그런 말에 사람들이 놀란 이유는 간단하다. 「닉슨」은 중산층 출신인데 반해「디즈레일리」는 중산 계급을 멸시했다. 「닉슨」이 「워싱턴」의 상류 사회인 「조지타운」의 「칵테일·파티」를 철저히 기피하지만 「디즈레일리」는 「빅토리아」 왕조의 「런더」 사교계 왕자였다.
「닉슨」과 「디즈레일리」는 1세기의 시간차뿐만 아니라 출신 배경이 판이하다. 그래도 「닉슨」은 목하 「디즈레일리」 철학에 심취해 있다. 「슐레징거」는 「닉슨」을 『교양 없는 사람』이라는 평을 하며 그런 사람의 행동은 예측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 「닉슨」의 지적 허영심은 시간이 갈수록 중증이 되어가, 그것은 앞으로 4년 동안에 여러 가지 극적인 정책으로 나타나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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