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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2)제 30화 서북청년회(32)현제기부 작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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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서청은 쉽게 돈을 안 내놓는 사람들에겐 강제적인 방법을 불사했지만 그 중에서도 박흥식씨(화신대표)·최창학씨(작고·금광왕)와는 끈질긴 줄다리기를 했다.
박흥식씨는 평남 룡강 출신이고 최창학씨는 평북 노성. 둘 다 평안도로 당대 재계의 거물이었으나 협조가 잘 안 돼 개운 찮은 뒷맛을 남긴 것이다.
박씨와의 흥정은 47년2월의 일로 보름동안 7, 8차례나 실랑이를 벌였다.
첫 교섭은 김성주 사업부장 등 몇몇 간부대원들이 나서서 벌였다.
몇 번이나 가회동 자택을 찾아갔으나 결과는 번번이 툇자였다.
당시는 서청이 발족된 직후여서 살림살이가 아주 쪼들릴 때. 허탕을 친 대원들은 『당장 잡아와야 한다』며 과격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박씨의 태도엔 손톱드 안 들어가 첫「라운드」는 서청의 후퇴로 일단 끝을 냈다.
그러던 어느 날 박씨가 뜻밖에도 선우기성 위원장을 자택의 만찬에 초대해와 자금지원 흥정은 2 「라운드」를 맞이했다.
이날 박씨가 선우 동지를 초대한 것은 아마도 서책의 후환에 신경이 쓰여서 였던 것 같았다.
이날 박씨는 그의 고문 김대우씨(일제 때 고관)를 데리고 나와 선우 동지 앞에 손수 음식을 떼 놓는 등「서비스」를 해주었다.
그리고는 문제의 자금에 대해 『해방 후에 많은 단체들이 쏟아질 줄 알고 미리 김붕준씨 (용강·임정요인)에게25만원을 맡겨 놓았으니 그리 알라』며 돈 이야기를 더 이상 못 꺼내게 선수를 쳐 나오는 것이었다.
선우 동지의 성격은 거 칠은 서청의 최고책임자 답잖게 과격한 일이라곤 못하는 위인. 웅숭한 대접에 지원언질까지 받은 그는 당초의 뱃심과는 달리 차마 요구액수를 못박지 못하고 그냥 물러나고 말았다.
손톱도 안 들어가던 박씨가 스스로 자금언질까지 주고 나온 것은 소득이었지만 이날 밤의 흥정은 서책이 박씨의 「페이스」에 완전히 말려든 것이었다.
실제 그와의 줄다리기는 이날 밤 우물쭈물 넘어 간 지원자금 액수 때문에 빚어진 것이었다.
돈을 맡겨 놓았다는 김씨를 만나면『다른 단체에도 줘야한다』며 5만원(20%)밖에 줄 수 없다고 버티는 것이었고, 사무실(화신 옆「빌딩」)로 박씨에게 몰려가 『절반은 내놔야한다』고 대들면 『김씨에게 다 얘기를 해놓았다』며 김씨에게 떠넘기는 것이었다. 「이번에는…」하고 단단히 벼르고 갔다가 그 말에 혹시나 해서 김씨를 만나면 대답은 똑같은 소리. 서책대원들은 이 같은 박씨의 지연전술에 걸려 그와 김씨 사이의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 꼴이 됐다.
일부 서책대원들은 비상수단까지 생각을 해봤었지만 끝내는 제풀에 지쳐 당초 내미는5마여 원만 받고 말았다.
최창학씨는 박흥식씨에 대한 실패를 거울삼아 위협까지 했으나 끄떡도 않는 등 여간한 사람이 아니었다.
최씨는 그때 경교장을 김구선생에게 주고 뒤채 한옥에서 살고 있었다.
최씨에겐 부하대원들이 먼저 나설 수 없다고 해서 선우 위원장이 직접 방문을 했다.
그는 박씨와는 달리 처음부터 말도 못 붙이게 봉쇄작전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왜 방문을 해왔는지 눈치를 모를 리 없는 최씨는 『젊었을 때 달구지를 끌었다』는 넋두리에서 시작, 고생담·돈번 얘기 등으로 말이 끊어질 줄 몰랐다. 도대체 이쪽에서 말을 건넬 틈을 주지 않는 「마라톤」식 지연작전이었다.
얀전한 선우 동지가 그의 애기를 경청하다가 가까스로「찬스」를 잡은 것은 2시간이나 지난 뒤였다.
「-좀 도와주셔야 겠읍니다.』그의 얘기가 잠시 끊어지는 순간 한마디를 겨우 끼어 넣은 것이다.
이미 지연전술을 쓸때 알아봤지만 그의 대답은 정면거부였다.
『내가 돈이 있나요. 이렇게 쓰고 저렇게 쓰고, 한푼도 없어요.』
선우 동지는 자기 힘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 날은 그냥 물러났다.
사정해서 안될 것은 뻔한 일. 대원들은 다음날부터 행동으로 나갔다.
파견된 대원은 박천 보안서장을 한 한관제 동지 등 수명이었다.
이들은 그 날 최씨를 다시 찾아 한번 더 말로 돈을 요구해본 뒤 『없다』는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대뜸 단도를 뽑았다.『이××,너의 배××에는 칼이 안 들어가느냐!』정 그렇게 나오면 찌르겠다는 위협이었다. 그러나 최씨의 배짱은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그는 처음 한순간 놀랐으나 곧 침착을 되찾고 『좋아! 얼마든지 해봐!』라며 한복 바지 끈을 풀어 내리고 배를 내미는 것이었다.
칼을 들이댄 대원들의 기세가 무색할 지경.
한 동지 등 대원들은 『정말×어! 누구 때문에 우리가 생명을 내놓고 이러는 줄 아느냐. 성의를 표해야 되지 않느냐』는 등 호통을 쳤지만 빈손으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원들은 근 일주일동안, 칼을 들고 다니며 지구전을 편 끝에 조금 씩 조금씩 기 만원을 겨우 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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