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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시대정신의 산물인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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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어제로 개관 한 달을 맞았다. 개관은 역사적으로 기억할 만한 사건이다.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센터는 세계인들에게 인문학적 상상력과 창의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은 미국인들이 근대성을 선취한 전략적 거점이다. ‘좋은 미술관’은 시대정신의 산물이며 공동체 구성원들의 열린 광장 노릇을 해왔다.

 이번 서울관 탄생은 우리를 지구촌 삶의 공동체 네트워크로 이어줄 행복한 끈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국립미술관이 수도 서울의 한복판으로 돌아온 것은 그 자체로 우리도 공동체의 삶을 기획하며 예술을 그 중심에 놓을 줄 아는 문화 국민이 됐음을 선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개관의 기쁨과 함께 그 뼈아픈 실패의 괴로움 역시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관 정도의 위상이라면 개관 기념전에서 세계 미술계를 향해 나름대로 새로운 예술 정의나 철학적 입장을 제시하리라 기대할 만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구성 방향, 기획 의도나 방법 등에서 이렇다 할 각도를 읽을 수 없다. 전문성과 윤리의식의 실종도 문제다. 국가적 위상에 걸맞게 한국 현대미술의 참모습을 보여주겠다며 기획한 상설전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은 인적 구성에서 특정 미대 동문전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래도 위안으로 삼을 것은 이번 개관전이 우리의 ‘좋은 미술관’을 향한 도전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내년엔 청주관 개관이 예정돼 있다. 이러한 인프라들을 제대로 살려내려면 이번 서울관 개관전이 내는 경고음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누가 뭐래도 미술관이 갖는 최소한의 존립 근거는 전문성과 공동체에 대한 윤리의식이다.

이인범 상명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