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응답하라 1994' 세대 … 그들은 누구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서태지와 아이들’은 힙합을 추며 “됐어(됐어), 이제 됐어(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교실 이데아’)라고 노래하고,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으며, 성수대교가 무너져 내렸다. 가수 김건모의 2집 앨범은 183만 장이 팔려나갔고,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 안에’ ‘서울의 달’은 무려 4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자를 끌어들였다.

 현재 30~40대들에게 이제는 추억으로 남은 1994년의 풍경이다. 서울 신촌 대학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응답하라 1994’는 94년의 각종 사회·문화적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 복고적 향수를 자극한다. 70년대 출생, 90년대 학번들이 주인공이다. 맏형 격인 경남 마산 출신의 쓰레기(정우)는 71년생(돼지띠), 90학번으로 의대 본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성나정(고아라)·칠봉이(유연석)·삼천포(김성균)·해태(손호준)·빙그레(바로)·조윤진(도희)은 모두 75년생(토끼띠), 94학번 신입생이다.

 97년 외환위기 한파가 몰아치기 이전 고도 성장의 마지막 혜택을 누리며 대학 생활을 하던 이들이다. 그들에게 한국 사회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이해하기 어려운 별종이라며 ‘신인류’ ‘X세대’라는 말을 붙였다.

 ‘삐삐(무선호출기)’와 286 컴퓨터, PC 통신 같은 정보기술(IT)의 발전과 서태지의 랩과 힙합 등으로 새로워진 대중문화 속에서 이들은 ‘달콤한 청춘’을 보낼 수 있었다. 민주화와 소련의 붕괴에 따른 탈냉전으로 학생운동에 대한 고민은 대폭 줄었고, 대학 졸업 후 취직은 비교적 여유가 있었던 시절이다. 록카페에선 흥겨운 리듬에 맞춰 이리저리 몸을 흔들고, 해외 배낭여행과 어학연수로 ‘외국 물’을 먹을 기회도 일찍부터 누렸다. 과외·사교육 제한 조치가 유효한 상황에서 서울과 지방의 교육 격차는 아직 심하지 않아 서울의 유명 대학엔 지방 출신 학생들이 몰렸다. ‘응답하라…’처럼 지방 출신 대학생들이 모여 사는 하숙집에선 각양각색의 팔도 사투리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외환위기 이전에 대학을 다닌 70년대생, 90년대 학번들이 이제 40세 전후의 나이가 됐다. 과거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의 386세대의 동생 격인 ‘497세대’다.

내년이면 한국 ‘중간 나이’ 40.2세

 하지만 예전의 40대가 누렸던 안정감은 찾기 어려워진 것이 이들 세대가 공통으로 마주하는 냉정한 현실이다. 이들이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사회에 진출한 이후 한국 경제는 ‘호황’이란 단어를 잊어버렸다. 물가상승률을 따진 실질 임금은 늘 제자리걸음인데 집값과 전세금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허리띠를 졸라매도 자녀의 사교육비를 대기에 버거운데 평균 수명은 길어지면서 노후 준비는 막막하기만 하다.

 황원경 KB경영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40대 초반은 ‘베이비붐 세대(55~63년생)’와 그들의 자녀인 ‘에코 세대(79~85년생)’의 사이에 ‘낀 세대’에 해당한다”며 “인생의 ‘롤 모델’로 베이비붐 세대를 따라 했지만 잇따른 경제위기, 부동산 거품의 형성과 붕괴를 차례로 겪으며 힘들어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는 “90년대 초반은 정치적 무거움을 벗어던지고 다양하고 순수한 욕구들이 분출됐던 대중문화의 황금기였다”며 “외환위기 이전의 경제적 풍요 속에서 문화적 흥겨움을 마구 쏟아냈던 것이 X세대”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최근 대중문화는 90년대 초반 같은 여유와 낭만이 사라지고 지나치게 상품화되면서 삭막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며 “이제 40대에 접어든 과거의 X세대가 그들의 20대를 그리워하며 ‘응답하라…’ 같은 드라마에 열광하는 배경”이라고 덧붙였다.

 다가오는 2014년은 인구사회학적으로 한국 사회의 중대한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한국의 ‘중간 나이’가 30대에서 40대로 넘어오는 해여서다. 통계청이 2060년까지 인구구조 변화를 예측한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14년 한국 사회의 중위연령(중간 위치의 나이)은 40.2세로 전년(39.7세)보다 0.5세 높아질 전망이다. 내년에 한국 사람 5000만 명을 모두 나이순으로 한 줄로 세운다면 한가운데에 선 사람의 나이가 40.2세가 될 것이란 뜻이다.

 중위연령은 한 사회의 인구구조에서 ‘무게중심’에 해당한다. 교복을 입은 까까머리의 10대 후반 고교생들이 4·19 혁명에 앞장선 60년의 중위연령은 19세였다. 80년(중위연령 21.8세)부터 90년(27세)까지는 20대 대학생들이 민주화 운동의 주도권을 잡고 한국 사회를 변화시켰다. 2000년(31.8세) 이후는 30대가 한국 사회의 중심을 차지했으나 2014년을 고비로 40대가 주도권을 쥐게 된다. 통계청은 2035년(50.8세)이 되면 중위연령이 50대로 넘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40대 초반은 ‘머릿수’도 많다. 대부분 ‘2차 베이비붐 세대(68~74년생)’에 해당한다. 안전행정부의 주민등록 인구통계(2012년 기준)에 따르면 ‘응답하라…’의 주인공 쓰레기가 속한 71년생은 95만 명으로 단일 출생연도의 인구수로는 1위를 차지했다. 출생연도별 인구 그래프를 그린다면 내년에 43세가 되는 71년생이 가장 높게 올라온다는 뜻이다. 흔히 1차 베이비붐의 대표 주자로 통하는 58년생(개띠, 80만 명)보다 15만 명이 많다. 68년, 69년, 70년, 72년생도 각각 90만 명이 넘었다. 2차 베이비붐 세대의 7년간 인구를 모두 합치면 640만 명에 달한다. 전 인구(5095만 명)의 여덟 명 중 한 명꼴(12.5%)이다. 이들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도 많이 남았다. 통계청은 지난해 40세였던 72년생의 경우 평균적으로 82.5세까지 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71년생 95만 명 최다 … 경쟁 일상화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는 “2차 베이비부머는 동년배의 숫자가 많아 유난히 치열한 입시경쟁을 뚫어야 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장기 불황을 맞은 불운의 세대”라며 “예전처럼 ‘40대=원숙함’이란 시각으로 바라봐선 결코 이들 세대를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에서도 인구의 정점인 73년생이 209만 명에 달하는 등 2차 베이비붐 세대(71~74년생)가 800만 명에 육박한다”며 “다만 70년대 초반 출생자가 일본에선 1차 베이비붐에 해당하는 ‘단카이 세대’의 자녀들(단카이 주니어)인 데 비해 한국에선 1차 베이비붐 세대의 동생·조카뻘이란 게 다른 점”이라고 덧붙였다.

 과거 X세대로 불렸던 현재의 40대는 생업 전선에서 한창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40대 남성의 대부분(고용률 93.1%)은 회사에 고용된 근로자나 사업가·자영업자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40대 여성도 세 명 중 두 명꼴(고용률 65.3%)로 일자리를 찾아 집을 나섰다. 직장인 남편, 전업주부 아내의 전통적 ‘성역할 모델’은 무너지고 맞벌이가 일반화됐다는 얘기다.

 전 교수는 “과거 세대가 직장을 다닐 때 과장-차장-부장으로 쉽게 올랐던 ‘승진의 에스컬레이터’가 고장 나면서 현재 40대가 느끼는 사회적 박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며 “과거엔 40대가 되면 정치적으로 보수화된다고 했지만 이들은 지켜야 할 기득권이 별로 없기 때문에 오히려 각종 투표에서 다소간 친야권 성향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50대 이상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냈지만 40대에선 문재인 후보가 55.6%의 득표율(방송 3사 출구조사)로 우세를 보였다.

 서울대 김난도(소비자학) 교수는 최근 발간한 『트렌드 코리아 2014』에서 ‘키디(Kiddie) 40대’라는 화두를 던졌다. 어른이자 아버지(Daddy)면서 동시에 아이(Kid)와 비슷한 감수성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소녀시대와 아이유의 음원을 내려받고 수지에 열광하는 ‘삼촌팬’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며 “딱지치기·구슬치기 등 아날로그적 놀이문화에도 익숙하면서 디지털 게임의 원조이기도 한 ‘놀 줄 아는’ 세대”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까지의 40대와는 다른 시대를 살아온 세대가 새로 40대에 진입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장의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자녀와 친구처럼 잘 놀아주는 ‘프렌디(Friendy·친구 같은 아빠)’가 많아지고, 치장하고 꾸미고 화장하는 ‘꽃중년’이 늘어나는 것도 ‘키디(Kiddie) 40대’의 특성이라고 김 교수는 분석했다.

 영산대 김우성(경영학) 교수는 “현재 40대는 한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대학 4년을 온전히 즐기면서 다닐 수 있었던 세대”라며 “하지만 X세대로 불리던 20대 청년기나 지금이나 일부에서 생각하는 만큼 소비 성향이 큰 세대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본격적인 소비의 시대는 X세대 이후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Y세대’ ‘에코 세대’가 열었다”며 “X세대는 베이비붐 세대의 공동체 의식과 Y세대의 개인주의적 가치관을 절반 정도씩 나눠 갖고 가교 역할을 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정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