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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공중전 논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차례>
①미국의 개입
②확 전의 불길
③「게릴라」전과 장군
④공중전 논쟁
⑤전쟁과 정치주역들
⑥춘계공세와「명예로운 종전」

<조지·맥아더 기>
【로스앤젤레스·타임스=본사특약】월남 공군은 워낙 보잘것없는 데다가 공군사령관이던 「키」장군이 정치적 야망에 미쳐 자기산하의「프로펠러」기들을「사이공」폭격에 사용하겠다고 늘 얼러댔기 때문에 군사보다는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따라서 미국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공군을 투입하게 되었다.
65년 월남에는「다낭」과「탄손누트」두 비행장밖에 없었다. 「웨스트 모얼 랜드」장군은 3억8천2백만「달러」가 드는 비행장 건설계획을 즉시 실시, 월남 안에는 공군기들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났다.

<지상군은 공중지원 환영>
65년 4월 첫 B-52기 공격이 시작되어 지상군지원에 이 중폭기가 사용되는 효시를 이루었다. 공중전에는 언제나 논쟁이 따랐다. 일부 조종사들은 월남전에 B-52를 동원하는 것은 「정글」을 베어 성냥개비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다. 또 반전비평가들은 폭격기들이 무수한 민간인을 죽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게릴라」전의 가장 좋은 무기는 단검이며 대포나 폭격기는 가장 나쁜 무기라고 명했다.
그러나 군 지휘관들은 처음에는 회의적이었지만 후에 가서 B-52를 신주처럼 모셨다. 「에이브럼즈」장군의 막료들 중에는 72년 춘계공세를 B-52 없이는 막아낼 수 없었다고 보고 있는 장교들이 있다.
앞으로 사가들은 오랫동안 이 논쟁 때문에 속을 썩일 것이다.
지상군은 공군기의 근접지원을 더없이 환영했다.
따라서 작전참모들은 거의 제한 없이 호지명 통로와 월맹에 대한 폭격을 허용했고 68년 「존슨」대통령이 북 폭을 중단시켰을 때 어떤 장교는 좌절감 때문에 울었다고 한다.
그러나 장성들과 제독들은 월남전쟁에서의 공중활동을 일반의 눈으로부터 가리려고 무진 애를 썼다.

<라오스폭격 64년 시작>
「라오스」에 대한 폭격은 이미 64년부터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70년 3월까지도 미행정부는 그 사실을 부인하고 있었다. 하지만 월남에 쏟아놓은 폭탄의 t수가 2차 대전의 총 폭탄t수의 3배가 넘고 있는 지금 공군의 그런 입장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이공」에 위치한 미 제7공군사령부로서는 원기 왕성한 조종사들의 무공 담을 억누를 수가 없어 공중전 PR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월맹상공에서 있었던 공중전으로 지금까지 월맹은 1백77대의「미그」기를 잃었고 미군은 71대의「제트」기를 잃은 것으로 되어있다. 대공 포화에 맞아떨어진 비행기를 합치면 미군은 1천53대의 항공기를 월맹에서 잃은 것으로 공식집계가 나와 있다.
공군지휘관은 이 모든 정보를 쉬쉬하고 있는데 한번은 아주 능률적이고 정확성과 신속성이 있어 기자들에게 잘 알려진 한 공군장교가 해직되었는데 이는 공군이 자체활동의 비밀유지와 관련된 인사라는 얘기.
물론 이 같은 현상은 결과적으로 72년「존·D·라벨」장군의 무단 북 폭 사건을 야기하기에 이르렀다.
「라벨」사건이 터지자 공군은 뒤늦게 그런「이미지」를 씻어버리려고 했다. 국방성에서 가장 치열한「브리핑」장성으로 알려진「존·보그트」장군이 후임으로 부임했고 그는 전례 없이 기자들에게「파티」까지 베풀고 솔직한 진상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그러나「라벨」사건은 월남전개시이래 누적되어 온 지휘계통의 허술 성이 가장 단적으로 표현된 사건이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선 미국관료제의 병폐가 치부를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월남전의 경우 미군의 지휘계통은「피카소」의 그림처럼 종잡을 수가 없어 어떤 때는 백악관에서도 뭐가 어떻게 돼 가는지를 모를 지경이다.

<해·공군, 제각기 북폭령>
하나의 전선통합사령관이 없는 대신에「닉슨」은 월남·태국·「라오스」, 그리고「크메르」에 각각 독립된 기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라오스」에서 폭격을 하려면「라오스」공군에 동보 하는 외에도 3개의 분리된 명령개통이 저마다 주인행세를 한다. 월맹에 대한 폭격도 마찬가지로 복잡하다. 해군과 공군이 매일매일 시시각각으로 독립된 폭격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또 월남영토 안의 B-52기 출격은「사이공」당국에 의해 목표가 선정되고 월맹지역에 대한 목표선정은 전략공군사가 합 참을 통해 해·공군과 상의한 후에 결정한다.
미 지상군사령관「웨스트 모얼 랜드」장군-그후「에이브럼즈」를 거쳐 현재는「프레드릭·웨이언드」장군이지만- 은 월남영토 외에서는 아무런 권한도 갖고 지 않았다.
체제 면에서는 제7공군이 지상군 사령관 휘하에 있었지만 월맹에서의 공중전은 전략 공군 사 및 해·공군에 의해 고의적으로 무시되었다.
이 같은 풍조는 부분적으로「존슨」및「닉슨」대통령이 월맹에 대한 폭격을 정치적 흥정의 신호로서 확대·축소·변경하는 바람에 더욱 심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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