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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 혈압계, 10%가 오차 허용치 초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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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30대 직장인 이모씨는 최근 대학병원에서 받은 종합검진에서 앞으로 고혈압(수축기 140mmHg, 이완기 90mmHg 이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큰 ‘고혈압 전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씨의 혈압은 수축기 125mmHg, 이완기 86mmHg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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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씨는 아버지가 고혈압 환자라 평소 병원에 갈 때마다 혈압을 체크해 왔다. 한 달 전 동네 의원에서 혈압을 쟀을 때도 수축기 115mmHg, 이완기 75mmHg로 ‘정상’이었다. 이씨는 “혈압이 10mmHg나 올라간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표준연) 의료융합측정표준센터는 병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혈압계의 정확도를 조사한 결과를 12일 발표했다. 표준연은 대전 인근 6개 병원에서 사용 중인 혈압계 3종류 477개의 측정치를 비교했다. 조사 결과 전체의 10.6%인 51개 혈압계가 오차 한도(±3mmHg)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병원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아네로이드 혈압계가 다른 혈압계보다 오차 한도를 초과하는 기기의 비율이 높았다. 187대 중 34대(18.2%)가 오차 한도를 초과했다. 이 혈압계는 공기압박대의 압력 변화에 따라 움직이는 막(diaphragm)을 이용해 혈압을 표시한다. 표준연의 도일 박사는 “아네로이드 혈압계는 스프링 등으로 만들어져 외부 충격에 약하고 오래 사용할 때 오차 폭이 커지는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수은의 유해성 때문에 과거에 비해 갈수록 덜 쓰이고 있는 수은혈압계의 오차범위 초과 비율은 7.3%였다.

 병원에서 환자 스스로 혈압을 잴 때 많이 쓰이는 자동혈압계는 오차 범위를 넘는 비율이 4%로 가장 낮았다. 하지만 자동혈압계는 제작사가 정한 자체 기준에 따라 기계가 자동으로 수축·이완기를 구분한다. 사람이 혈관에 피가 도는 소리(혈관음)를 직접 청진기로 들으며 수축·이완기를 구분하는 아네로이드·수은혈압계와는 다르다. 이 때문에 제작사별 편차가 있다는 게 표준연의 설명이다. 혈압계에 오차가 있으면 과잉진료를 받거나 거꾸로 적당한 치료시기를 놓칠 수 있다. 문제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시중에서 판매되는 새 혈압계만 정확도를 검증할 뿐, 병원에서 사용하는 혈압계가 정확한지는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표준연은 내년 상반기부터 병원을 상대로 혈압계를 교정해 주는 서비스를 할 예정이다.

 한편 같은 혈압계로 재도 측정값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50대 직장인 김모씨는 최근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다가 “혈압이 높다”는 간호사의 말에 겁이 덜컥 났다. 하지만 5분 뒤 다시 재보니 정상 범위였다. 이런 경우는 심리적 요인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같은 양의 혈액이 흘러도 혈관이 딱딱하냐 부드러우냐에 따라 압력이 달라지는데, 통상 흥분을 하거나 긴장을 하면 혈관이 굳어 혈압이 올라가고 명상 등을 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면 혈압이 내려간다.

 평소엔 멀쩡하다가도 병원에만 가면 혈압이 높게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자기도 모르게 긴장을 하게 돼 혈관이 굳고 혈압이 올라가는 것이다. 의사들은 이런 증상을 ‘백의(白衣·의사들이 입는 흰색 가운) 고혈압’이라고 부른다. 반대로 실제 혈압은 높은데 의사 앞에만 서면 정상 수치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가면(假面) 고혈압’이라고 불린다. 서울성모병원 순환기내과 김성환 교수는 “24시간 내내 측정해도 매번 달라지는 게 혈압”이라며 “아침에 일어나 공복인 상태에서 재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말했다.

김한별·이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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