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의 사고방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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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올 2월19일이면 코페르니쿠스 탄생 5백주년이 된다. 새삼 감동적인 일련의 의문이 떠오른다. 코페르니쿠스는 폴란드의 프라우엔부르크 사원담 위에 있는 작은 탑에 천문대를 가지고 있었다.
말이 천문대이지 그의 천문의들은 자기 손으로 만든 거의 원시적인 것들이었다. 망원경이 발명되기 1세기전이었다.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기상 조건도 천체 관측에는 몹시 나쁜 곳이었다.
「발틱」해에 가까운 탓으로 1년 내내 안개와 구름에 덮여 있었다. 밝은 하늘은 별로 볼 수 없었다.
이런 곳에서 코페르니쿠스는 3l년간 거의 매일같이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해 나갔다. 물론 혼자였다.
매우 고독하고 무미 건조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이겨낸 그는 무엇에 사로잡혀 있었을까? 뭣 때문에 그런 생활을 자청했을까? 이게 첫 의문이다.
그가 지동설을 믿게된 것은 1506년에서 l5년 사이의 일로 추측되고 있다.
지동설은 지금은 아무도 뒤집지 못하는 진리가 되어 있다. 그것을 그는 숨겨두려고 애썼다. 자기의 발견을 가장 친한 벗들에게만 살짝 알려 주었을 뿐이었다.
진리란 때로는 무서운 것이다. 우리를 안다는게 오히려 죄악으로 여겨질 때도 있다.
코페르니쿠스 자신 그 진리가 무서웠다. 그는 임종을 며칠 앞두고 겨우 책을 내놓았다. 그제서야 자기가 자기에게 미치지 않으리라고 안심한 탓이었을까? 아니면 그제서야 자기 이론에 자신을 갖게 된 때문일까?
책이 나온 것도 사실은 젊은 제자 레티크스의 간청에 의해서였다. 레티크스만 아니었더면 책은 끝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그는 겁에 질려 있었을까? 무섭기도 했을 것이다. 그는 교황에게 보낸 편지에서 새삼 자기의 굳은 신앙을 밝히기까지 해야했다. 루터나 칼빈까지도 그를 배신자라고 저주하기도 했다.
소박한 의문들은 아직도 많다. 그러나 의문이 생기면 생길수록 코페르니쿠스의 진리를 캐내려는 불굴의 의연한 자세가 더욱 눈부시게 나타나 보이는 것이다. 근래에 이르러 여러 과학자며 사학자들은 지동설을 재평가하기 시작하고 있다 한다.
지동설은 그가 처음이 아니었다.
1499년에 발간된 어느 천문학 책에도 지동설은 들어 있었다. 여기서 「코페르니쿠스」 가 계시를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그의 이론에는 오류도 많았다. 이렇게 학자들이 까 내리기는 매우 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가 어떤 상황 속에서 지동설을 펴 나갔는지를 학자들은 저버리고 있다. 그러는게 마음 편한 일일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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