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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하는 야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고백이지만 누구못쟎게 나도 야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속물적인 뜻에서 이름 석자를 날린다는 야망 따위는 아닌 것 같다. 이럭저럭 내딴에 노력을 하며 살아온 것만은 틀림없는 모양이어서 이즈음 심신의 피로를 무척 느끼기 시작한 것으로 미루어 과연 내가 야심을 속심으론 품고 있었던 것이 된다.
이 나이 되기까지 그많은 신년을 맞이하며 새로운 설계도 어지간히 했겠지만 대체로 판에 박힌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왜냐하면 그것들은 언제나 작은 「나」의 그것이었으니까 말이다. 하기야 나는 작은 「나」의 이야기나 할 수있는 이름 석자에 불과하니까. 적은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노력형으로 되어 있으리라. 지난 몇 10년간의 개념으로는 소위 정치도 할 줄 모르고 얌체도 못되고 남을 밟아 올라설 줄도 모르는 꽁생원으로 말하리라.
그런 형이 나라면 내가 어찌 누구에게 공개할만한 설계가 있겠는가.
그러면서도 나는 심신의 피로를 느끼는 가운데도 한결같이 신년에는 거의 한결같은 속셈을 다져본다. 이 해에도 나는 내 나이의 영·불·미·일인 등의 외국친구들과 비하여 재물을 제외하고는 뒤질 것이 없겠는가고. 여태까지는 내가 만나는 범위의 외국친구들에게는 별로 뒤졌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물론 직업이야기를 떠난 일반적인 견식에서 말이다. 연극·음악·미술에서 국제정치 또는 「골프」에 이르기까지 흔히 「런치」나 긴 「디너」 석상에서 일어나는 갖은 대화에서 말이다.
그러기 위하여 나는 영·불어를 보다 능하게 구사하는 노력을 해야했고 기회가 닿는 한 외국의 시·지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은 것 같다. 하찮은 노력이긴 하였지만 내딴에는 직업밖에서도 한 동양인으로 혹은 한국인으로서의 「인텔리전스」와 「인텔렉추얼리즘」을 그들 외국인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이 작은 「나」는 만족감을 느껴왔다.
앞으로도 그러한 노력을 한층 자신을 갖고 해나가겠다는 것이 나의 신년설계이고 보면 유다른 이야기가 아니어서 좀 민망스럽다.
물론 나는 시인으로서 시도 써야 한다. 그것은 생존이니까. 한 직업인으로서는 해마다 대하는 많은 외국인들에게 작은 「나」가 그들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새해에도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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