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늘을 함께 사는 벗들에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같은 시대, 같은 사회, 같은 생활 여건 속에서 인간의 삶을 함께 이어가고 있는 수많은 벗들에게 1973년의 새해 인사를 드린다.
유한한 인생이기에 시간이란 척도를 생각해 냈고, 시간의 경과에 따라 유전과 변화가 생멸 하고, 변화에 따라 인간은 생로병사를 거듭하며, 무상의 윤회 속에서 인생은 비의 기임을 깨닫게 된다. 송구영신의 뜻도 이런 언저리에 있다.
우리가 사는 현대를 우리는 어떻게 볼 것인가. 기술의 혁신에 따라 인간 생활의 「편의」가 「진보」됐다고 한다. 그러나 생활 조건상의 편의의 확대는 인간 자체의 확대를 가져오리라는 대신에, 인간 상실의 암담을 초래해 가고 있다.
기술 사회의 단계를 넘어 초 기술 사회, 지식 사회라고도 한다. 그러나 정보 처리와 두뇌의 개발이 인간 자체에 관한 지혜의 차원을 높이지는 못하고 있다. 인간 존재를 포함한 자연의 대도에 견주어 볼 때, 인간의 지성은 미학과 잡학에 저하여 조화의 사상을 체계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현대를 조직 사회라고도 한다. 사람과 사람의 집단은 조직화되어, 그것은 마치 기계 장치인양 조작되고 조직 공학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인간은 인간에 의하여 장치화 되고, 기물화 되고, 도구화되었다. 인간의 존엄성, 인격의 절대성은 인간 정신사의 유물적 용어가 되어 버린 듯 하다.
이러한 상황과 생활 조건 위에 우리 모두의 생은 존재하고 있다. 특별한 연기에 의하여 우리는 서로 인연 지어져서 이 시대, 이 조건 속에서 살게 마련이 되어 있다. 이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행할 것인가.

<유어의>
인간은 신이 될 수 없으며, 어떠한 의미에서는 절대 자연할 수가 없다. 인간에게는 생사가 있고, 너와 나는 똑같이 무상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이고 절대적인 것일 수가 없다.
선과 악 사이에는 상거가 없고, 시와 비 사이, 미와 추 사이, 애와 증 사이에도 절대적인 분리가 있을 수 없다. 삶과 죽음 사이, 너와 나 사이에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다.
생사를 출리하고 자타를 초월한, 불이의 심경을 우리 범인이 바랄 수는 없다. 그러나 모처럼의 인간 성애를 욕망만을 갈애 하다가 번뇌 끝에 민사 한대서야 지나친 비참이 아니겠는가. 또는 지인의 지도 자지의 명도, 제1의에 대한 지도 없이, 그저 타와 겨뤄 승하고 식욕의 노로서 생을 시종 한다면 참말로 무명의 치노라 아니할 수 없다.
인간에게 무한은 없다. 하물며 인간 욕망이 무한하게 충족될 수는 없다. 경제학도 욕망과 충족의 균형을 말해준다.
지족자부는 유가의 교훈이고, 탈욕·무욕은 불가의 가르침이다. 욕망의 그림자 때문에 정견과 정사가 흐려지면 정도를 찾을 길을 없는 것이다.
권세의 안목으로 인간과 사회를 보고, 돈을 기준 삼아 인생을 보고, 애증에 취하여 세상을 보는 그러한 인간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선과 악 사이에는 상거가 없고, 시와 비 사이, 미와 추 사이, 애와 증 사이에도 탐하여 세상을 보는, 그러한 인간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논어에 군자는 유어의 요소인은 유어리라 했다. 사람마다 이기만을 좇게 되면 인간 사회의 화는 어떻게 될 것이며, 사람마다의 마음의 화락은 어떻게 될 것인가. 부귀나, 애증이나, 육신의 수 따위는 유한한 것 중에서도 가장 유한한 것이며, 그것에다 생의 보람을 부여할 수는 없는 것들이다.

<최고선>
생의 보람은 인간이 소유하는 무엇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에 있다. 인간이 인간의 존귀함을 깨닫고, 인간만이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의 최고선을 추구할 때, 비로소 인간의 아름다움은 열리는 것이다.
인간의 최고선은 무엇인가. 그것이 문자로 표현될 때 「인」이래도 좋고, 「자비」래도 좋고, 「사랑」이라 해도 좋다. 표현상의 차이를 넘어 선훈에 공통되는 것은, 인간보다도 더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과, 받는 것보다는 줌으로써 충실해지고 확대된다는 것이다.
상대적인 욕망 때문에 생의 실상을 잃은 인간, 중정의 안심을 외면하고 과혹불급의 정염 속에 일상을 보내는 인간, 사이불망의 대도 대신에 세속의 영욕 속에 실기소 하는 인간, 이러한 인간과 인간의 삶은, 자신을 파멸시키고 남을 해치고 인간 사회를 온통 고해로 만들어 버린다.

<사무사>
사무사·행무사는 극기 정진이 있어야 비로소 이룩될 수 있다. 인간이 소외되고, 인간이 기물화 한 오늘에 있어서는, 극기복례의 마음의 자세는 수용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 스스로의 마음을 정도 위에 가다듬고, 남을 애경함으로서 너와 나로써 형성된 인간 사회의 화락을 도모한다는, 사람의 도리는 버려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 회복의 시대적 요청도 그 유래를 이런데서 찾아야할 것이다.
좌표를 잃은 시대, 목적을 잃은 인간, 의미를 상실한 생활, 이런 것들이 우리가 함께 사는 오늘의 특성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시대 정신의 향방은 무엇인가. 현대인의 이상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왜, 너와 나는 오늘과 같은 생활을 그저, 맹목적으로 이어가고 있는가. 우리는 심안을 바로 뜨고, 인간의 좌에 나 자신을 빨리 안존시켜야 하겠다.
왕양명은 산중의 적은 물리치기 쉬우나, 심중의 적을 소탕하는 것은 난하다 했다. 만물은 마음의 소생이다. 현대인에게 기본적으로 결한 것은 마음의 수련이다. 마음을 무명의 우치 속에 가둬 넣고, 외색의 미망 속을 방황한다는 것은, 눈을 가리고 길을 가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우리는 특수한 인연과 요리에 의해서 오늘을 함께 사는 벗들이다. 오늘을 함께 가는 인류의 동행들이다. 이 인연을 고맙게 여기고, 서로 감사의 인사를 나누자. 그리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예를 다 하자. 그리고 인간 최상의 경지를 이 시대 위에 펼쳐 보도록 정정진 하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