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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남원목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전북 남원군 운봉면 일대는 예로부터 이름난 목기고을. 이곳 마을마다 지리산줄기가 뻗쳐 목기의 재료인 원목이 풍부했기 때문.
운봉목기가 소문나기 시작한 것은 이조중엽.
제사 때는 나무그릇을 사용하면서부터 목기의 주문이 늘게됐다.
당시 궁중에서는 매년 정초에 이곳에서 특별히 제기를 주문해왔었다고 주민들이 자랑처럼 전했다.
현지에서 구전되는 얘기로는 쇠소리·사기소리 등이 나면 영혼들이 얼씬도 하지 않아 제기로는 소리 안나는 목기여야 했다는 것. 가벼워 사용하기에 편리하고 녹이 나지 않아 깨끗하게 보존할 수 있기 때문. 특히 목기는 서민적인 공예품으로 모든 계층에서 아낌을 받아왔다.
운봉목기의 전성기는 양은그릇이 부족하고 「플라스틱」을 몰랐던 해방전후. 그 무렵은 거의 모든 가정에서 목기를 만들었다. 이 때는 나무가 산에 무성했고 도벌도 가능해 한 달에 몇「트럭」분씩의 목기를 만들어 파는 사람도 많았다. 갑부도 생겼다.
이땐 제기뿐 아니라 밥통·찬합·차판·과자그릇·수저·젓가락 등 주로 식기류를 만들었다.
당시는 목기에 각종무늬를 넣기도 하고 섬세한 손질로 운봉목기의 명성을 굳혔다.
「스테인리스」·「플라스틱」이 시장에 범람하고 특히 약5년 전부터 지리산국립공원개발계획으로 벌채가 일체 금지되면서부터 일반목기는 자취를 감췄다.
현재는 운봉면 서천리에서 이성렬씨(40) 홀로 제기만을 만들고있어 운봉목기의 명맥을 간신히 잇고있다.
이씨의 공장은 집 뒤 처마와 울타리사이를 「슬레이트」로 덮어만든 10여평의 가건물. 나무를 전남구례에서 1재(1치×12자)에 40원씩 사온다. 옹이가 없고 틀어지지 않고 터지지 않아야 된다. 보통 오리나무·들모나무·박달나무를 많이 쓴다.
먼저 통나무물림틀에 원목을 물려 술잔은 1치5푼, 접시는 2치4푼 정도로 톱으로 자른다. 자귀로 8각으로 귀돌이를 친 다음 「모터」로 된 제기틀의 움쇄방울에 귀돌이를 물려 돌린다. 여기에 강철로 만든 길이 30㎝ 가량의 칼을 대고 요리조리 밀고 당기면 원목은 마치 팥고물이 주물러지듯 되고 만다.
움쇄틀에 물려 돌아간지 1분 가량만 지나면 뭉퉁한 통나무는 아담하고 밋밋한 술잔으로 변한다. 이 정도 기술은 5년 정도의 숙련을 요한다는 이씨의 말.
초갈이가 끝나면 음지에다 한달 가량 말린다. 틀어지거나 많이 벌려진 것은 버린다. 조금 벌려진 것은 나무조각 등으로 흔적 없이 때운다. 이것이 재갈이. 다음은 「카슈」를 칠한다. 10년 전만 해도 옷나무에서 칠을 빼 썼으나 지금은 공장에서 나오는 간장색의 「카슈」를 쓴다.
붓으로 4번 칠한다. 한번 칠하고 말린 후마다 부드러운 「페이퍼」로 문질러 모양을 낸다. 초갈이와 칠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잘 보이지 않는 먼지만 앉아도 칠이 마른 후에는 선명히 나타난다.
이씨는 주문생산만을 하고 있다. 주로 중간상인상대로 잡목제기 한 벌에 1천3백70원에 넘기면 시중에서는 2천5백원 홋가.
고급인 노간주나무는 잡목의 2배. 겹제기는 마춤에만 응하는데 가격은 일정치 않다.
한 벌이란 접시 대4개·중10개·소l0개·잔대2개·술잔2개·탕기3개·향합1개 등 32꾜개.
이씨는 공원 3∼4명을 두고 연7백벌을 주문 받는다.
도시상가에 진열된 각종 목기제품에서는 조상들이 몇 달씩 걸려만든 수제목기의 정교함을 찾을 수 없다고 주민들은 아쉬워했다. [글 채영창기자 사진 박성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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