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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걱정 안 하는 강남 사람은 누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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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주민 중 노후자금을 상담하러 오는 사람은 보통 아파트 한 채에 금융자산 3억~4억원 등을 포함해 자산 10억원대가 많습니다. 자녀를 출가시킨 뒤 강남을 떠나도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아파트를 팔고 경기도나 지방으로 옮긴 뒤 수익용 부동산을 사고 싶어 하지만 매매 자체가 안 되는 실정입니다.” 삼성증권 은퇴설계연구소 김진영 소장의 얘기다.

 하지만 취재 중 만난 강남 주민 중엔 노후자금을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 이도 적지 않았다. 대개 물려받은 재산이 있는 경우다.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미혼 신모(38·반포동)씨는 “부모님이 아파트를 한 채 사주셨고 다른 한 채는 은행에서 1억3000만원을 대출받아 직접 구입했다”며 “월급 외에 아파트 두 채에서 나오는 임대수익으로 매달 200만원, 그리고 저축은행 이자도 적지만 꼬박꼬박 나온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님 집에서 같이 살기 때문에 지출할 돈도 별로 없다”고 했다. 그래서 벌써 6년째 월 50만원씩 개인연금을 넣고 있다.

 증권회사에 다니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경영을 배우고 있는 김모(39·반포동)씨도 비슷하다. 그는 “서래마을 빌라에서 월 2000만원 정도 임대수익이 나오기 때문에 은퇴 비용을 고민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월급쟁이에 비해 사업하는 이들이 역시 모아놓은 재산이 많다. 초등학교 3학년과 영어유치원에 다니는 자녀 둘을 둔 정모(42·도곡동)씨는 “남편이 사업을 하는데 건물이 있어서 노후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교육비로 월 300만원 이상 쓰는데 영어·수학뿐 아니라 운동·예체능 등 다양하게 시킨다”고 했다. 그는 “사업이 잘 되고 있고 필요하면 건물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면 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기회를 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물려받은 재산이 없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런 상황에서도 노후 대비를 잘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은 강남에 살면서도 교육비 등 자녀에 올인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미취학 자녀 하나를 둔 전모(35·대치동·과외 강사)씨는 “은행 다니는 남편과 합해 월 700만원가량을 번다”며 “다른 엄마들은 월 300만~500만원씩 교육비로 쓰던데 우리 부부는 ‘학원 뺑뺑이’ 돌리는 걸 원치 않아 월 수입 절반을 연금과 예금으로 꼬박꼬박 저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도 사교육은 영어만 시킬 계획이다.

 맞벌이 김모(34·방배동)씨도 “남편이 증권회사에 다니는데 아마 40대에 은퇴하지 않을까 싶다”며 “그때를 대비해 소득의 30% 이상을 연금보험·저축성보험·변액보험 등에 넣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 교육비도 투자금에 충당할 생각이다. 김씨는 “아이 대학등록금을 위해 수입 10%는 따로 저축성 보험에 들었다”며 “대학등록금 외에 주변 사람들이 하듯 사교육비에 큰돈 쓸 생각이 없다”고 했다.

 아들 둘을 둔 김모(56·방배동)씨도 또래보다 훨씬 일찍 노후자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공무원으로 퇴직한 남편이 현재 제2의 직장에 다니고 있어 연금까지 합하면 월수입 600만원이 넘는다. 게다가 수입의 40% 정도를 금융상품에 투자한다. 대학 졸업 후 아이들에게 일절 도움을 주지 않아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여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큰아들이 결혼할 때도 소소한 결혼비용을 댄 것 외에 전세금도 도와주지 않았다. 김씨는 “우리 집 철학이 빚지지 말자는 것”이라며 “자동차는 물론 집도 현찰을 주고 샀다”고 말했다. 그는 “대출 없고 살 집 있고 연금 나오니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성탁·윤경희·전민희·심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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