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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세계 관군의 내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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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방 참전 부대>(1)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우방 유엔 회원국들은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신속히 한국 지원에 나서 공산군과 대전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다음 기록에서 보는 바와 같이 유엔 결의나 조치에 앞서 해공군의 한국전 투입을 결정했고 유엔은 이 결정을 추인 하는 형편이었다.
그러므로 유엔에서 소련의 거부권 행사로 파병 결의안이 좌절됐더라도 미국은 틀림없이 개입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엔을 통한 개인은 미국에는 「세계 관군」이라는 「비단 깃발」을 안겨주는 것이었다. 「세계 관군」구색을 갖추기 위하여 유엔 16개국이 한국에 응분의 전투 병력을 파견하였다. 주력인 미군 이외에는 제일 많은 영국의 지상군 1개 사단으로부터 「룩셈부르크」의 1백명에 이르기까지 상징적인 군대를 파견하여 유엔의 개입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이렇게 병력 자체는 명목상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들 우방국 부대들이 공산 침략을 저지하는데 있어 「빈자의 일등」격의 참된 기여를 한 것은 틀림없었다.

<안보리, 즉각 철수 등 3항 결의>
다음은 이들 우방국들이 한국전에 참전하게된 동기와 실제 전투 기록이다.
1950년6월25일 하오 2시쯤(한국 시간 26일 하오 3시쯤) 미국의 제의에 따라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긴급 회의가 소집되었다.
한국에서 북한 공산군이 38선을 넘어 불법 남침해 왔기 때문에 한국은 물론 아세아의 안전을 토의하기 위해 미국이 긴급 회의를 요청한 것이다. 소련 대표는 이미 50년1월 중공의 유엔 가입 문제로 퇴장했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이사회의 소집에 불응하고 있었다.
「트리그브·리」유엔 사무총장은 한반도로부터 직접 들어온 유엔 한국 위원단의 보고와 그 밖의 정보를 토대로 북한이 유엔 헌장을 위반, 침략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 당시 주미한국대사였던 장면 박사는 이 회의에 「업저버」로 참석, 유엔은 한국에서 일어난 위험한 사태를 즉시 해소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줄 것을 호소했다.
이에 따라 안전 보장 이사회는 한반도의 사태를 다룰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기구임을 인식하고 ①분쟁의 즉각적인 정지와 함께 ②북한의 38선 철수 ③「유엔」회원국의 원조 등 3개 항목을 결의했다. 이 결의안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전 보장 이사회는 대한민국 정부가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의 감시 하에 선거민의 자유롭고 정당한 의사 표현으로 선거에 의해 수립된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상기하고 북한군의 군사 공격을 중대 관심으로 주목하여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①분쟁의 즉시 정지와 함께 북한 당국에 대해 군대를 38선까지 철퇴할 것을 요구한다. ②유엔 한국 위원단에 대하여는 이 사태에 관하여 가능한 한 조속히 그리고 충분히 고려한 다음 건의할 것, 북한군의 38선 철수를 감시할 것, 이 결의 실시에 관하여 안보리에 수시로 보고할 것 등을 요청한다. ③전 회원국은 이 같은 결의를 실시하기 위해 유엔에 모든 원조를 아끼지 말고 북한에 대해서는 원조를 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안보리의 이 같은 결의에도 불구하고 공산군은 아랑곳없이 계속 38선을 넘어 남하하고 있었다.
6월27일 하오 3시쯤(한국 시간 28일 하오 4시) 제2차 안보 이사회가 열렸는데 이 자리에도 소련 대표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오스틴 미 수석 대사는 유엔은 창설이래 가장 심각한 위기에 놓여있다고 지적하고『1차 회의에서 채택된 결의안이 북한 지도자들 손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의 상황을 미루어 보아 북한은 유엔의 결의에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북한은 안보리의 결정을 완전히 조롱하고 있다고 분개했다.
그리하여 유엔 안보 이사회는 이날의 2차 회의에서 『안보리는 대한민국으로부터 평화와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빠르고도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호소를 받아들여 유엔 회원국은 이 지역의 군사적 공격을 물리치고 평화와 안전을 회복하는데 필요한 원조를 제공할 것을 건의한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 각 회원국들의 군사적인 개입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출병 않은 회원국선 의료 지원>
이 같은 결의는 트루먼 미 대통령이 한국전에 대한 미 해공군의 개입을 승인한 후부터 약 24시간이 지난 뒤에 이루어졌으나 소련 대표가 안보 이사회의에 계속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다 빨리 채택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안보리의 결의를 실천하기 위해 「리」 유엔 사무총장이 51개 회원국들에 대해 출병을 요청하고 또 미국이 앞장서서 육해공군을 참전시키자 유엔 회원국들은 직접 간접으로 한국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6월28일 「애틀리」수상이 한국에서의 미군을 지원하기 위해 당시 일본 수역에 있던 영국 해군 함정을 미 극동군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의 지휘하에 둔다고 성명 했다.
호주 정부도 이 같은 영국 정부의 태도에 호응하여 해군을 맥아더 장군의 지휘하에 맡긴다고 발표하고 공군도 미 공군과 협동하기를 희망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뉴질랜드 및 캐나다 정부도 이 같은 태도를 취해 결국 영국을 비롯한 영 연방 국가들은 한국 사태에 대해 적극 지지하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이 외에도 유엔 회원국 중 군대를 지원하지 못할 경우에는 의약품이나 의료시설·식량·수송 수단 등을 제공하겠다고 신청해 왔다.
이에 따라 유엔 회원국들의 지원 부대를 통합·통솔하는 단일 지도 기구의 설치가 필요하게되어 7월7일 안보 이사회는 통합군사령부 설치에 관한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 결의안의 목적은 유엔 군사령부를 설치하고 유엔 회원국의 군사적 원조를 맥아더 장군의 통일 지휘하에 두려는 데에 있었다. 미국으로서는 실질적으로 전작전의 책임을 진 맥아더 사령부와 안보 이사회의 속결을 강화 할 필요가 있었다.

<파견 병력 연 5백11만2천명>
이날 채택된 안보리의 결의 내용을 요약하면 ①한국에서 작전하는 유엔군의 사령부를 설치한다 ②미국에 대하여 유엔군 최고사령관의 임명을 요청하며 ③작전에 참가하고 있는 각국 군대는 자기 나라의 국기와 함께 유엔기를 임의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④최고사령관지휘하에 행해지는 작전을 안보 이사회에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제출한다는 것 등으로 되어 있다.
이 결의에 의해 이날로 유엔기는 「리」사무총장으로부터 오스틴 미 수석 대사에게 전달되었으며 트루먼 대통령은 7월8일자로 맥아더 장군을 유엔군 최고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유엔의 이 같은 활동에 따라 회원국들은 한국 전선에 군사적인 지원을 시작, 미국·영국·터키·태국·남아공화국·필리핀·뉴질랜드·화난·룩셈부르크·그리스·프랑스·이디오피아·콜롬비아·캐나다·백이의·호주 등 16개국에서 육해공군 또는 해병대 등의 군대를 파견했고 덴마크는 병원선을, 인도는 야전 이동의 무대, 이태리·노르웨이·스위스는 야전의무대를 보내와 의료 활동을 도왔다.
사단법인 유엔 한국 참전국 협회에 의하면 한국전이 시작된 이후 한국에 파견된 16개국 병력은 전쟁이 끝난 후의 교체 병력을 포함하여 연인원 5백11만2천여명에 달하며 인명 피해는 17만7천6백15명으로 집계되어 있다.
이 집계에 의하면 사망 5만8천6백86명, 부상 11만8천9백29명으로 이중 미군은 사망 5만4천2백42명, 부상 10만3천2백84명으로 전체 인명 피해 17만7천6백16명 중 미군이 15만7천5백30명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덴마크」등 병원선 보내기도>
따라서 미국을 제외한 15개국의 인명 피해는 총 2만85명이며 이중 4천4백40명이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특히 미국의 참전은 연인원 5백88만명으로 되어 있으나 정전 이후 한국에 복무한 병사들의 숫자까지 모두 포함한 것이며 한국전 3년간 실제로 전투에 참가한 병력은 약 2백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밖에 의무 지원한 5개국의 지원 활동을 보면 이태리는 50년9월20일 1개 야전 병원을 파견, 54년 말까지 민간인을 포함하여 19만명을 치료했고 스위스 야전 병원은 50년9월23일부터 55년5월까지 12만명, 노르웨이는 야전 외과 병원을 파견, 51년6월부터 54년12월까지 9만여명을 각각 진료했다.
또 덴마크는 8천5백t의 병원선을 파견, 51년3월부터 53년11월까지 7만2천명을 치료한 외에 「노르웨이」「스웨덴」과 함께 중앙의료원 설립을 지원했고 인도의 야전 이동 병원은 50년11월부터 54년2월까지 영 연방 사단에 배속되어 있으면서 의료 활동을 해왔다.
◇주요일지(1952년8월5∼8일)
※5일 ▲미 공군, 북한 78개 도시 주민에 소개 공개 ▲대통령 선거 평온리에 종결 ▲중국관계 일본인 전범 88명 석방 ▲아이크 후보 선거 공약 발표 ▲애급 정부, 약 2억불의 「파르크」 전왕 재산 몰수
※6일 ▲4국 공군전서 「미그」6대 격추 ▲올림픽 헝가리 선수 9명 귀국 거부
※7일 ▲장택상 총리와 자유당 관계 악화 ▲체코 2∼3만명의 중산 계급을 도시서 추방
※8일 ▲이승만 박사 5백23만 표로 대통령 재선, 부통령에는 함태영씨 당선
◇정정=본련재 398회 본문 기사 중 해병 2대 대장 강봉생 소령은 염봉생 소령으로 바로 잡습니다.
◆알림=376회까지 게재된 민족의 증언을 4권의 책에 수록하여 12월 중순에 발간합니다. 이에 대한 문의나 연락은 을유문화사((73)8150)나 중앙일보 편집국 「민족의 증언」담당자 앞으로 (28)8211 (교환)의 74, 야간과 일요일은 (94)3415로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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