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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헌법후의 여성 생활 개선|그 방향을 찾는 좌담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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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천주(사회)=남과 북의 대화, 국민투표,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여러 가지 국내·외 변화들은 우리 여성들에게 새로운 각오와 반성을 요구하고 있읍니다. 지금까지 여성들이 사회·가정·육아 등 여러 면에서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돌이켜보고 앞으로는 어떻게 방향 설정을 하면 좋겠는지에 대해 여러분 선생님과 의견을 나눠보겠읍니다. 우리의 자세에서 반성할 점이 있었다면 어떤 점이겠는지 원 선생님부터 말씀해 주실까요.
▲원선희=우리 나라의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지혜롭게 노력하면서 살아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남성에 못지 않게 많은 짐을 지고 부지런히 일해온 것이 사실이지요.
다만 가치관이랄까 인생의 목표 같은 것이 뚜렷하지 못했고 또 과학적이며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힘이 부족했던 까닭에 노력에 비해 성과가 적었다고 볼 수 있겠읍니다. 앞으로 이런 점을 보충해 가야겠지요.
▲정연희=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만일 우리여성들 중에서 잘못 살아온 사람이 있었다면 그것을 몰지각한 일부 여성들뿐이었고 일반 여성들은 부지런하게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원 선생님의 말씀을 다시 반복하게 되겠는데 앞으로는 좀더 내실을 기하면서 생각과 살림을 정리해 가는 태도가 필요하겠지요.

<합리적 사고력 부족>
▲김인자=요즘은 곳곳에서 새마을이다 새 생활이다 하는 말을 많이 쓰게 되는데 이것은 지금까지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내자는 말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을 토대로 하면서 부족했던 점을 보충해 나가자는 뜻으로 해석해야 되겠읍니다. 따라서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아왔던 지난날의 생활태도를 기초로 하되 맹목적으로 열심히 살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과학적으로 따져가면서 버릴 것은 버리고 보충할 것은 보충하자는 태도를 가져야할 것으로 봅니다.
▲김천주=그러면 구체적으로 한 부문 한 부문 살펴 가볼까요. 여성의 역할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역시 어머니로서의 역할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우리가 자녀교육에 있어서 보충할 점이 있다면 어떤 점일까요.
▲정연희=저는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교육내용의 대폭적인 수정 없이는 국가장래를 위해 아무런 바람직한 변화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읍니다. 가정마다 한 어린이 어린이를 어떻게 기르느냐에 따라 그들의 가치관이 형성되고 이들이 모여 국민성을 이룬다고 생각할 때 자녀교육은 어떤 다른 국가사업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보겠읍니다. 요즘 대두되는 민족주체사상 같은 것도 어린 시절의 교육을 통하지 않고는 완전한 실효를 거둘 수 없으리라고 봅니다.

<교육의 대폭변화를>
▲원선희=옳은 말씀입니다. 교육 중에서도 저는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라도 하루의 3분의2는 가정에서 보내게 됩니다. 우리 나라의 부모들은 특히 자녀애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냉정히 생각할 때 아이들을 교육시킬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부모가 많다고 봅니다. 특히 아버지들 중에는 자기 아이가 몇 학년인지 생일이 언제인지 조차 모르는 분이 아주 많다고 보는데 양쪽에서 관심을 가져도 될까말까한 일을 어머니 쪽에만 맡긴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지요. 이런 가정풍토부터 고쳐야겠읍니다.
▲김인자=아이들을 올바로 키우기 위해서는 비단 가정이나 학교뿐 아니라 사회전반이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잘 되려면 3천만이 동해바다에 들어가 모두 씻고 나와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처럼 어른들의 교육이 병행되지 않고 어린이 교육에 성과를 거두기는 힘들지요. 가끔 학교를 돌아보면 아주 시설이 나쁜 학교이면서도 학생들 정신교육에 좋은 효과를 보고있는 학교가 있는 반면 모든 것을 다 갖춘 학교인데도 효과가 부진한 학교를 보게 됩니다. 이것은 그 학교 선생님들이 교육철학을 가졌는가 이념이 확실한가에서 오는 것인데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정신자세에 따라 자녀들의 가치관이 결정되겠지요.

<교육준비 안 된 부모>
▲김천주=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교육열이 높은 것은 큰 자랑이었읍니다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교육열이 딸은 시집이나 잘 보내고 아들은 좋은 직장을 얻어 출세를 시켜보자는 욕심에서 나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읍니다. 부모나 당사자나 교육을 받음으로써 이 사회와 인류를 위해 일해보겠다는 각오가 없었읍니다. 이것은 물론 우리의 사회제도, 교육제도의 결함에도 책임이 있다고 봐야지요. 지금까지 유례없이 교육열이 높았고 또 남녀에게 평등한 교육기회가 주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어른들의 정신자세에 늘 결함이 지적되는 것은 우리의 교육투자가 어딘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가끔 어머니들을 만나 얘기해 보면 아이들이 좋은 상급학교에 합격만 해 준다면 더 큰 효도가 없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가정교육이고 뭐고 하루종일 학교공부와 과외수업에 시달리다가 집에 오는 아이들을 붙들고 얘기할 시간이 없다는 거지요. 이런 교육제도, 부모들의 정신자세에 개혁이 없이는 올바른 교육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교육열 냉철히 반성>
▲김인자=그런데 제도란 결국 우리들이 받아들었기 때문에 그것이 제도로 존속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들 자신이 그 제도를 거부할 단결력도 용기도 없었다는 것 역시 큰 문제지요.
▲정연희=글쎄요. 어머니들이 어떻게 교육제도를 거부합니까. 제도의 개혁은 국가가 과감하게 해줘야지요.
▲김인자=그런데 또 행정가들의 말을 들으면 어머니들이 그런 제도를 요구한다는 거지요. 가령 예를 들면 요즘 체육과외를 시키고 있는 학교가 많은데 이것은 어머니들이 입시과목에서 체육을 중시하기 시작하자 한 점이라도 더 따야 한다는 욕심으로 주장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도시락 2개를 들고 다니던 아이돌이 3개를 들고 가야하고 심지어는 새벽4시에 집을 떠나야하는 무리가 일어나고 있읍니다. 어머니들이 정말로 이점을 깨닫고 그들의 용기와 힘을 조직해서 단결력을 행사해야합니다.
▲원선희=바로 이런 조직과 단결의 교량역할을 해야할 곳이 여성단체가 아니겠읍니까. 지금은 이미 우리 여성들이 가정에만 묻혀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못하던 시대가 지났다고 봅니다. 저희들도 전국을 다녀보면 오히려 지방일수록 여성들의 사회의식이 높고 단결이 잘 되는 것을 봅니다. 여성단체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시되는 시기이고 따라서 여성단체의 과감한 개혁과 정리가 있어야겠지요.
▲김천주=교육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리 말해도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는 가정관리·가정경제부문으로 화제를 옮겨 볼까요. 우리 주부들이 교육을 받았거나, 못 받았거나 똑같이 부엌이나 집안의 개량, 가계의 합리화 등에 관심이 적다는 평을 받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연희=그런 점은 첫째 늘 수입이 넉넉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봐야지요. 실제로 월급 받아쓰는 가정들을 보면 가옥개량에까지 손이 가기는 힘듭니다. 누구건 동선을 짧게 해서 편리한 부엌을 만들자는 욕심이 없는 주부가 있겠읍니까.
그러나 이런 점은 연구할 필요가 있겠죠. 늘 4만원, 5만원 월급으로 한 달을 살면서 있는 대로 쓰고 없으면 빚지고 할게 아니라 1년 혹은 2년 계획을 세워 단돈 얼마라도 저축하는 자세를 갖는다면 부엌 개량도 그렇게 힘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늘 주위사람들에게 가정부 없이 살기를 권하고 저 스스로도 그렇게 삽니다만 아이를 두세 명 가지고도 가정부 없이 얼마든지 잘 살아가는 친구들을 봅니다.
이렇게 하면 자연히 일의 능률, 합리적인 계획과 검토에 관심을 갖게되고 아이들과 남편도 가사를 돕고 자기 일은 자기가 하는 좋은 습관을 기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가계꾸리는 슬기도>
▲원선희=가정부를 둔다는 문제는 꼭 일을 시키는 목적 이외에도 주부가 밖에 일이 있을 때 집을 보게 한다는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주부들이 집 볼 사람이 없어 할 수 없다는 말을 합니다. 이점은 우리사이에 만연된 불신풍조와도 관련이 있겠는데 한마을 이웃집들끼리 서로 집을 봐준다던가 공동으로 가정부를 둔다던가 하면 가계절약뿐 아니라 지역사회개발을 위한 협동정신을 갖는데도 큰 도움이 될 듯합니다.
▲김천주=가족계획의 보급, 또는 생활합리화 등으로 요즘은 30대 중반에 가면 다시 사회에 참여할 여유를 갖게되는 부인이 많습니다. 이들의 힘을 효과적으로 사회발전을 위해 쓴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인데 여기대해 한 말씀 해 주실까요.
▲김인자=요즘 통신대학제도가 생겼는데 저는 이것이 대학과정 뿐 아니라 중·고등학교 과정에까지 확대되어 주부들 뿐 아니라 모든 성인들의 재교육에 크게 기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1950년대에 이 제도가 시작되어 주부들이 다림질하면서도 틈틈이 교재를 읽고 또 시험을 쳐서 졸업증을 딴 후 쉽게 일자리를 얻고 있읍니다.
여성들의 이러한 사회참여는 자기발전이나 가계의 보조뿐 아니라 이 사회와 국가를 남자 손에만 의존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갖게 하는데도 도움이 될 듯합니다. 여성들 모두가 국가발전에 관심을 갖고 거기 참여할 수 있도록 힘을 길러야한다는 것이 오늘 이 좌담회의 결론이 되는 것 같습니다.

<참석자>
김인자 <서강대 교수·아동심리학> 원선희<여성단체협의회 기획연구위원장> 정연희<작가> 김천주<사회·주부「클럽」총무>
◇11월24일 상오10시
◇중앙일보사 회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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