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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지 배송 부실, 마감일까지 못 끝내 2주 연장 … 시민단체 "투명하게 개표 공개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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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고교평준화 여론조사가 6일 마무리된 가운데 질문지와 평준화 시 계획, 조사과정이 부실하게 진행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천안의 가장 큰 관심사 가운데 하나가 고교평준화다. 고교평준화 시행 여부를 판가름 할 여론조사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여론조사가 차질을 빚으면서 기간이 연장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철저히 계획을 세워 일정대로 진행하지 못한 용역업체의 여론조사를 놓고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6일 여론조사가 마무리됐지만 조사업체를 신뢰하지 못한 일부 학부모와 시민단체가 설문지 결과를 공개 개표해야 한다며 주장하고 나섰다.

천안 고교평준화 여론조사가 시작된 건 지난달 11일부터다. 천안지역 중학교 1학년 학생과 초등학교 6학년 및 중학교 1학년 학부모, 초·중학교 후기고등학교(15개교) 교직원·학교운영위원, 교육전문가(시·도의원), 학교당 50명 이내 고교동문회 등 3만 1000여 명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설문조사가 진행됐다. 여론조사는 2주간(지난달 22일)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찬반 여론조사 마감이 임박해도 일부 학교에서 설문지를 받지 못했다. 우편을 통해 설문지를 받는 일부 학교운영위원도 마감이 지난 후 설문지를 받는 상황이 발생했다.

마감까지 설문지 못 받고 회신봉투도 없어

조사 주체인 충남교육청은 당시 이 같은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관리에 허점을 드러냈다. 우편으로 설문지를 발송하는 설문지 봉투에도 문제가 발생했다. 일부 설문지 봉투에 회신용 봉투를 따로 보내지 않아 말썽을 빚었다.

천안고교평준화시민연대(이하 시민연대)에 따르면 일부 조사대상자가 마감이 지난 후 여론조사 업체로부터 고교평준화 찬반 여부를 묻는 설문지를 받았지만 설문지에 조사 기간을 비롯해 작성한 설문지를 보낼 회신 안내나 회신 봉투가 들어있지 않았다. 시민연대는 고교평준화 찬반을 묻는 여론조사 마감일인 지난 22일까지 천안지역 9개 학교와 시·도의원, 학교운영위원 등 1560명의 대상자들에게 설문지가 배부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일부 학교의 경우 ‘학부모 투표 확인서’도 제대로 배포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시민연대 등에 따르면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1학년 학부모들이 학생들을 통해 여론조사 설문지를 받아 작성한 후 설문에 참여했다는 내용을 확인 받아 학교 측에서 보관해야 하지만 일부 학교에서 확인서를 배포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여론조사를 안내하는 문자도 제때 발송하지 않아 학부모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결국 충남교육청은 여론조사지 배부 현황과 우편발송 현황 등을 여론조사 업체에 파악한 결과 애초 계획한 지난달 22일까지 끝내기 어렵다고 판단해 업체와 협의해 조사 기간을 2주일 연장했다. 충남교육청은 지난 10월부터 3차례에 걸쳐 천안 고교평준화 여론조사를 진행할 업체를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모집했고 지난달 8일 용역업체와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위·변조 방지책, 평준화 따른 정보 없어

천안의 교육정책 변화가 예상되는 중요성을 감안하면 설문지의 위·변조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설문용지에 일련번호나 각 설문지마다 도장이 따로 찍혀 있지 않아 용지를 복사하거나 바꿀 경우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실제 두 장으로 나눠진 설문지 첫 장에는 여론조사 기관의 도장이 찍혀 있지만 정작 찬반을 묻는 뒷장에는 도장이 찍혀 있지 않아 설문지가 바뀌거나 복사돼도 알아 볼 방법이 없다. 시민연대는 이에 대해 “조사결과가 65%를 넘었을 때 설문지를 통째로 바꿔 65% 이하로 만들어도 검증할 장치가 아무 것도 없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학교군 설정, 학교 배정방법, 학교 간 교육격차 및 비선호학교 해소 계획, 단위학교 교육과정의 다양화·특성화 계획 등에 대한 안내 역시 형식적이었다. 평준화가 시행될 경우 교육격차 및 비선호 학교 해소 방안, 단위학교 교육과정 특성화를 위한 정보를 알지 못한 채 단순히 평준화 시 배정 방법, 대상학교만 보고 찬성과 반대를 선택해야 했다.

 지난 2011년과 2013년 6월 고교평준화 시행 여부를 놓고 여론조사를 진행한 강원도와 용인시의 경우 학교 간 교육격차 해소 방안으로 교실과 도서관 등 시설공사 예산 지원은 물론 교통편의에 대한 안내까지 언급했다. 비선호학교 해소를 위해서도 학교 이미지 개선을 위한 진로 프로그램, 방과후 특별프로그램, 학교 홍보비 지원 등 구체적 방안을 게재했다.

아울러 단위학교 교육과정도 능력·적성·진로에 맞게 특성화를 추진하고 학교 특색에 따라 중점과정과 진로과정을 편성, 강사와 운영비를 지원하겠다며 큰 틀에서의 추진 계획을 자세히 안내했다. 이에 반해 천안의 설문지에는 ‘학교 간 교육격차 해소 및 비선호학교 해소를 위해 노력할 것이며 다양한 교육과정 운영 등을 통해 단위학교 교육과정의 다양화·특성화를 추진할 것’이라는 게 전부였다.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진행돼야”

천안지역 고교평준화 여론조사가 부실하게 진행됐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시민연대가 강경대응과 함께 향후 진행될 여론조사 설문지 찬반 결과를 공개 개표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시민연대는 최근 성명을 통해 찬반 여론조사 지연에 따른 공식 해명과 개표 참관 보장을 요구했다.

시민연대는 ▶현장에서 조사를 해 회수한 학생 외에 학부모와 교사의 투표 명부가 작성되지 않았고 학부모의 경우 충남교육청이 공문으로 학부모 확인서를 설문지와 배포하고 회수해 학교에 보관하도록 지시했지만 배포되지 않은 점 ▶투표 용지를 복사해 사용하거나 바꿀 경우를 이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로 일련번호나 각 장마다 도장이 없어 조사결과를 검증할 방법이 없는 점 ▶현재까지 진행된 질문지 배포 수와 회수율, 학교에 배포된 질문지를 하루 만에 회수하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경위, 공문을 통해 최초 안내 문자를 보내지 않은 학교 현황, 우편발송이 늦어졌지만 지난달 27일까지 회수해 달라는 문자를 발송한 경위에 대한 조사와 발주기관 지시·감독 불이행에 따른 관련자 처벌 ▶6일까지 회수한 여론조사 설문지의 최종 보고서 발표일과 질문지 회수 후 개표 과정 공개 참관 등에 대해 명확한 해명과 답변을 교육청에 요구했다.

이상명 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이번 여론조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각종 문제점을 볼 때 교육청의 허술할 관리감독과 무능력이 그대로 드러났다”며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진행되지 못한 이번 여론조사에 대해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민들이 많은 만큼 개표만이라도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개표 시 학부모와 시민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개표 상황을 공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태우 기자

1980년 평준화, 1995년 비평준화로

고교평준화 정책은 1974년 처음 도입됐다. 암기식·주입식 입시 위주 교육의 폐단을 개선하고 고등학교 간 학력차를 줄이기 위해서였다. 선발방식은 예를 들어 5000명의 일반계 고등학교 입학생을 뽑을 경우 시험으로 석차를 정하지만 모두 추첨을 통해 학생들을 해당 지역에 있는 일반계 고등학교에 나눠 배정하는 방식이다.

학교별로 시험을 치러 학생을 뽑는 고교선발제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평준화 지역에서는 교육감이 고교 정원만큼 선발해 학생을 학교에 배정하고 비평준화 지역에서는 학교장이 학교별 정원을 선발한 후 합격자를 대상으로 입학을 허가한다. 천안은 평준화와 비평준화를 모두 경험한 지역이다. 천안은 1980년부터 14년 동안 고교평준화를 실시해 오다가 1995년부터 비평준화로 전환해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비평준화 지역이었던 강릉·춘천·원주는 여론조사를 거쳐 평준화 지역이 됐다.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충남이 유일한 비평준화 지역이다.(일부 시군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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