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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혼식 맞은 「엘」여왕 부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20일 결혼25주년을 맞이한 「엘리자베드」영국여왕과 「필립」공은 축하우편물 속에 파묻혔으며 화려한 「웨스트민스터」수도원에서 감사기도를 올림으로써 지난 20년이래 가장 성대한 황실잔치를 보여주었다.
교회마다 종소리가 울리고 국기가 거리마다 펄럭이며 축하군중들이 「런던」중심가로 몰려드는 가운데 여왕부처는 아침부터 밤까지 쉴 새도 없이 여러 축하행사에 참여해야만 했다.
실로 「런던」은 1953년 여왕대관식 이후 이날과 같은 성대한 잔치들은 구경할 수 없었다.
여왕부처는 이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가족들로부터 축하선물을 받았으며 왕실에는 세계각지로부터 쏟아져 들어온 수천 통의 축하전문과 「메시지」가 쌓여있었다.
46세의 여왕은 부군과 나이 어린 「에드워드」왕자와 함께 「리무진」을 타고 그들이 1947년에 결혼식을 올렸던 「웨스트민스터」수도원으로 향했다.
푸른 「밍크·코트」를 입은 여왕이 온통 깃발로 뒤덮인 거리를 지나가자 이미 한시간 전부터 연도에 대기하고 있던 축하군중들은 환호성을 울렸으며 여왕은 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2차대전이 끝난 지 2년 후인 47년 오랫동안 계속된 두 사람의 비밀의 사랑이 열매를 맺어 결혼식은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소박하게 거행됐다. 전승국이라고는 하나 경제적으로 피폐했던 영국에서는 결혼식참석 때 예복이 없어 평상복을 입고 축하하는 사람도 있었다.
결혼「케이크」마저 9「피트」(2.7미터)의 훌륭한 것이었으나 식량배급 시대였으므로 재료를 멀리 「오스트레일리아」서 운반해왔다.
「엘리자베드」여왕과 「필립」공이 처음 알게된 것은 여왕이 「릴리베드」라고 불리던 1939년7월. 당시 13세였던 「릴리베드」공주는 「다트무드」의 해군사관학교를 시찰하러 갔던 부왕「조지」6세를 따라갔다가 19세의 사관후보생인 「필립」과 알게됐다.
「필립」은 당시 몰락한 「그리스」왕실의 후예. 「콘스탄틴」1세의 조카였다.
우연히 39년 당시 홍역이 유행하여 국왕은 사관학교시찰에 「엘리자베드」와 「마거리트」를 사관학교 교장 집에 남겨두고 갔다.
이때 두 공주의 말동무로 사관학교장집에 간 것이 「필립」공. 두 사람은 이때부터 매우 가까워졌다. 가난한 공자와 부유한 공주의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두 사람에게 공통된 점이 있다면 둘이 모두 「빅토리아」여왕의 후예라는 것뿐이었다.
2차대전이 발발된 후 임관되어 「아프리카」로 파견된 「필립」공은 「크리스마스」때 꼬박꼬박 「버킹엄」궁으로 인사를 보냈다.
처음 「크리스머스·카드」를 받았을 때 「릴리베드」공주는 기뻐하면서도 자기도 「카드」를 보내지 못한 게 무척 서운해 늦기는 했지만 자신의 사진을 「필립」공에게 보냈다.
「필립」공도 공주의 사진을 받고 자신의 사진을 보냈다. 이 때 보낸 「필립」공의 사진은 지금도 「엘리자베드」여왕의 집무실에 은으로 테를 둘러 장식돼있다.
이때부터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의 편지가 남몰래 오고가 끝내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슈테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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