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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에 '회색 재앙' 감시벨트 짜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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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420’. 8일 오전 7시 중국 베이징(北京)의 공기오염지수다. 세계보건기구(WHO) 권장 허용치(㎥당 25㎍)보다 16.8배 높은 수치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두꺼운 스모그용 마스크를 착용했음에도 매캐한 석탄 연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가시거리는 100m도 안 됐다. 이틀째 베이징은 밖에서 얘기를 나눌 수 없는 도시가 됐다.

 중국발(發) 회색 재앙 ‘차이나 스모그(China Smog)’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중신왕(中新網)에 따르면 7일 하루 동안 중국 20개 성 104개 도시에서 초미세먼지(PM2.5) 기준 300 이상인 사상 최악의 스모그가 발생했다. 중국 정부도 ㎥당 300㎍(마이크로그램)이 넘으면 스모그 최고 경보 등급인 오렌지경보를 발령한다. 주중 미국대사관은 아예 독성가스에 준한다며 외출을 절대 삼가라고 자국인들에게 통보한다.

 스모그로 인해 베이징 서우두(首都) 공항의 경우 7일 하루에만 93편의 국내선 항공기가 취소됐고 80여 편은 지연됐다. 상하이(上海)에선 144편이 취소, 340여 편이 지연됐고 장쑤(江蘇)성 난징(南京)에서는 111편이 취소되는 등 이들 3개 도시 피해승객만 4만 명이 넘는다. 이런 중국 스모그는 기존 오염물질 배출에다 지난달 15일 시작된 겨울철 난방으로 석탄 사용량이 급증한 게 원인으로 지목됐다. 중국 정부는 스모그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추구하고 있어 2030년까지 크게 개선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8일 오전 충남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 기상청 기후변화감시센터. 청명한 하늘 아래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고 있었다.

 경사가 가파른 길을 오르자 3층 높이의 건물 두 동이 나타났다. 취재진을 맞은 임한철(40) 기상연구사는 서쪽 바다 끝 수평선을 가리키며 “저쪽이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중국발 미세먼지가 불어오는 방향”이라며 “지난주엔 미세먼지로 하늘이 뿌옇게 변했었다”고 말했다.

 임 연구사는 연구동 옥상에 설치돼 있는 미세먼지 측정장비로 안내했다. 그는 “오늘은 미세먼지 농도가 ㎥당 20~30㎍으로 평소 수준이지만 지난주에는 81~120㎍까지 오르내렸다”며 “농도가 다시 치솟을 것에 대비해 긴장해서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차이나 스모그는 바다 건너 한반도에도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하지만 한국의 감시망엔 구멍이 뚫려 있다. 중국발 오염물질을 감시하기 위해 백령도~태안~제주를 잇는 ‘서해 감시벨트’ 구축이 시급하지만 환경부와 기상청은 기존 시설이 있는데도 협업을 외면하고 있다.

 현재 서해 백령도와 제주도에는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의 대기오염 집중측정소가 위치해 있어 미세먼지 등 중국에서 날아오는 오염물질을 감시하고 있다. 또 충남 태안군에 자리 잡고 있는 기상청의 기후변화감시센터에서도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를 측정한다. 그런데 같은 중국발 미세먼지를 측정하고 있지만 환경부와 기상청은 공동연구 수행은 말할 것도 없고, 측정 데이터 교환조차 하지 않고 있다. 기상청 기후변화감시센터 임 연구사는 “환경부로부터 자료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김명자(전 환경부 장관) 회장은 “국경을 넘는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고 그만큼 체계적인 데이터 축적이 필요하다”며 “정부 부처 간, 정부 부처와 산하기관 사이의 정보 공유가 잘 안 되는 문제부터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태안=이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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