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화단에 태동한 새「리얼리즘」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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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여름「파리」에서 개인전을 가진「조지·시갈」의 작품들은「유럽」의 화가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아리스」가 시와 음악을 듣고 있다』『술집』『서있는 사나이』『노부부』『침대의 남녀』『타임즈·스퀘어의 밤』『춤추는 사람들』은 추상의 불모에 가까운 실험에 식상한 화가들에게「리얼리즘」의 활로를 확실히 터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과거에의 복귀가 아닌, 현실에의 회귀로 파악될 이 경향은 대중에의 접근을 다시 기도하는 새「리얼리즘」이라 해석되고 있다.
의식세계를 담은「포프·아트」나 대중의 기호를 무시한 예술가의 독주에 의한 추상화에서 벗어나, 대중에 접근할 수 있는「리얼리티」에 대한 예민한 후각의 부활 같은 것이다.
그것은 60년대 세계미술의 주역을 맡은 미국적 전위운동에 반발을 느껴왔던「유럽」이 미술계에는 하나의 계시였다. 그리고 70년대에 들어 회고전이 잦아짐에 따라 근대작가에 대한 새로운 공명의 진폭이 커졌음을 의미한다.
「조르지·루오」의 탄생 1백주년 기념 전은 미술의 숭고미를 다시 일깨웠고,「몽드리앙」과「반·고호」의 회고전이 예술을 인생이후의 의미와 결부시켰던 근대적 예술가의 태도를 재음미하는 기회가 되었다.
연초「파리」에서 열린 영국「로맨티시즘」예술 전은 영국회화의 황금시대를 이룩한「레이놀즈」「게인즈보로」「칸스티블」「터너」「반·존즈」「단테·가브리엘」「로세티」 「블레이크」에 이르는 약 3백30점이 선을 보였다. 또 미「마이애미」대에서는 3, 4월에 걸쳐「라파엘」전파의 회고 전을 열었다.「로맨티시즘」과「라파엘」전파는 근대「디자인」의 선구자인「윌리엄·모리스」를 거쳐 19세기말의「아르누보」에 계승되기 때문에 이 두 곳의 19세기 회고 전은 현대의 의미를 되묻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한편「런던」에서는「프랑스」상징주의 전(1880∼1900)이 열렸고「뉴욕」의「샤프·포카스·리얼리즘」기획전(72년 1월), 서독「카셀」의『리얼리티는 무엇인가?』란 주제의 미전(72년 6∼8월) 등 일련의「리얼리즘」에 대한 재평가작업이 철저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조지·시갈」(1924년 생)의 예술에서 볼 수 있듯 현대작가의「리얼리즘」에 대한 감각은 실재감과 박력의 회복이지 옛것의 모방이나 재현은 아니다. 그 실재감과 박력의 근거는 초현실주의 사실성과도 다르다. 현실의 인물과 작가의 만남과 그런 부닥침에서 생기는 『70년대 적 우리의 경험』의 핵심을 찌르는 것이다.
독일의 한 평론가는 새「리얼리즘」을 이렇게 정의했다.『세계를 말하고 자기를 말하지 않는 것은 과학이다. 세계를 말하지 않고 자기를 표현하는 것은「히스테리」의 발작이다. 새 「리얼리즘」은 세계를 그림으로써 나를 표현하고 나의 숨김없는 표현으로「리얼리티」의 핵심을 찌르는 것』이라고 한다.
「베를린」대의「가도·슈이찌」교수는 고도로 공업화된 사회의 인간조건은 일반적인 인간조건에 통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예술의 주관적 특수성을 찾던 전후의 미술운동이 그만 종지부를 찍고 객관적인 보편성을 회복하려는 새「르네상스」를 의미한다.
따라서 재기 냉소 절망을 표현한「다다」와 신「다다」를 놓고 창의를 곧 현실의 왜곡· 위 악과 동일시했던 전후 감성의 파산을 뜻한다. 【AFP=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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