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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원훈까지 바꿨지만 늘 용두사미로 끝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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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호 08면

‘정보’라는 막강한 힘을 가진 국정원은 정권이 바뀌는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정치 개입 논란의 중심에 서왔다. 1996년 제15대 총선을 앞두고 여당에 불법 선거자금을 지원했던 ‘안풍 사건’에서부터 지난 대선 때 댓글 의혹 사건에 이르기까지 국정원은 선거 때마다 정치권의 주목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국정원 개혁은 가장 중요한 국가적 개혁 과제 0순위에 올려지곤 했다.

역대 정부의 국정원 개혁

 김영삼정부도 문민통제를 강화하며 안기부법 개정에 나섰다. 군 형법상 이적죄 등에 대한 수사권을 삭제하고 정치관여죄를 신설했다. 또한 국회 정보위를 신설해 국회에 국정원 통제 기능을 부여했다.

 김대중정부는 명칭부터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서 국가정보원(국정원)으로 바꿨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원훈도 ‘정보는 국력이다’로 교체했다. 국내정치 개입 부서를 통폐합하고 해당 인력도 절반가량으로 감축하는 등 구조조정도 단행했다.

 노무현정부는 민변 출신인 고영구 변호사를 국정원장에 앉히며 국정원 변신을 시도했다. 대공정책실을 폐지하고 사찰성 정보 수집과 정부·언론기관 상시 출입 관행도 없앴다. 또 대통령의 국정원장 주례 독대보고를 폐지해 주목을 모았다. 하지만 해외정보처로 전면 탈바꿈시키겠다는 공약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이명박정부는 ‘지난 10년간 간첩을 잡는 국정원 본연의 기능이 약화됐다’는 판단에 따라 국정원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이에 따라 간첩 수사, 대북 공작, 사이버 안보 등이 국정원의 주요 업무로 떠올랐다.

 대통령만 국정원 개혁을 화두로 내건 것은 아니었다. 야당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비판했다. 1998년 야당이 된 한나라당이 이른바 ‘국회 529호실 사건’을 통해 당시 안기부의 정치사찰을 쟁점화한 게 대표적이다. 이후 한나라당은 국정원 폐지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정권마다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국내 분야의 과도한 권한이 축소돼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이 같은 개혁이 늘 용두사미로 끝나버린 것도 공통점이다. 그만큼 국정원의 힘과 권력이 막강하다는 방증이다. 집권세력도 시간이 지날수록 국정원 정보에 점점 의지하게 되고 이를 야당 탄압에도 활용하면서 국정원 개혁은 동력을 상실하곤 했다.

 전문가들은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가 최대 과제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비밀리에 활동하는 정보기관이란 속성상 제도적 견제는 좀처럼 쉽지 않으며, 따라서 법과 제도만 바꾼다고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담보하긴 쉽지 않다”며 “국정원을 정치와 분리하겠다는 집권자의 일관된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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