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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시간 20여 일 … 일정·의제·특검 ‘3대 난제’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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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개혁 특위 여야 간사인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오른쪽)과 민주당 문병호 의원이 7일 국회 정론관에서 회동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뉴스1]

국회 국가정보원개혁특별위원회(국정원 개혁 특위)가 6일 14명의 위원 선임을 마무리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닻을 올렸다. 하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정원 개혁을 바라보는 여야 간 입장 차가 워낙 커서 논의 시작 단계부터 난관에 부닥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우려다.

 여야 간 쟁점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특위 운영 방식과 의제 선정, 특검 도입 여부 등이다. 이 ‘3대 난제’ 앞에 험난한 가시밭길이 예고돼 있다. 주요 개혁법안을 연내에 처리하기로 합의하면서 20여 일이란 짧은 기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압박 요인이다. 그런 가운데 여야 지도부는 당내 강경파들의 견제 속에서 최악의 파국을 막기 위한 해법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샅바싸움만 하다 흐지부지 끝날 수도”
특위 여야 간사는 7일 비공개 회동을 갖고 9일 첫 전체회의를 열기로 합의했다. 국정원 업무보고도 10일 받기로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물밑에선 ‘특위를 어떤 방식으로 운영할 것이냐’를 놓고 팽팽한 기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 특위에는 국정원 개혁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입법권이 처음 부여됐다. 따라서 관례대로라면 합의문에 명시된 공청회 외에도 업무보고와 현안 질의를 거쳐야 한다. 이 자리에는 해당 기관의 장인 국정원장이 출석하도록 돼 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정치 선전의 장이 돼선 안 된다”며 현안 질의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민주당은 “짚을 건 짚고 가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회의 공개 여부도 민감한 부분이다. 새누리당과 국정원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내용이 많이 거론될 수 있는 만큼 비공개 원칙을 선호하는 데 비해 민주당은 공개가 원칙이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논의 대상 문제도 언제든 불거질 수 있다. 민주당은 “엄연히 합의문에 특위 대상이 ‘국정원 등’이라고 적시돼 있는 만큼 대선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국군사이버사령부와 국가보훈처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논의 대상을 가급적 국정원에 한정하자는 입장이다.

 여야의 입장이 평행선을 그으면서 정치권에서는 “자칫 의사 일정을 둘러싸고 샅바싸움만 하느라 개점휴업 상태를 지속하다 흐지부지 끝날 수도 있다”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실제로 지난 7월 국정원 국정조사 특위 때도 위원 선임을 둘러싼 공방 끝에 활동 개시 14일 만에야 민주당 위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반쪽짜리 첫 회의가 열린 전례가 있다.

 어렵사리 의사 일정이 합의되더라도 ‘무엇을 다룰 것이냐’를 둘러싸고 또 한 차례 격돌이 예고되고 있다. 당장 국정원 국내파트 폐지가 핫이슈로 떠올랐다. 국정원 특위 새누리당 간사인 김재원 의원은 “합의문에 없는 건 의제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국정원의 방첩 기능은 꼭 필요한 만큼 거론할 필요도 없다”고 못박았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도 “합의문만 보면 이는 국정원 무력화 특위다. 예산도 중요하지만 안보는 더 중요하다”고 반발했다.

 반면 특위 위원인 민주당 민병두 전략홍보본부장은 “국정원 요원의 정부기관 출입을 금지하기로 합의문에 명시한 것은 국내파트 업무 자체를 없앤다는 의미”라며 “국내정치 불관여를 위해서는 국내파트 폐지가 필수”라고 반박했다. 민주당은 한발 더 나아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도 적극 추진할 방침이지만 새누리당은 “합의문에 없는 내용”이라며 일축하고 있다.

 사이버심리전 규제와 관련해서도 민주당은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해 불필요한 기능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인 데 비해 새누리당은 “북한이 대남심리전을 강화하고 있는 마당에 대북 심리전 대응 활동을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백승주 국방부 차관도 7일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 참석해 “지금 수사 중인 사안과 사이버사령부의 중요성은 구분해서 생각해야 하며, 오히려 예산을 더 투입해 사이버 전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애매한 특검 합의, 연말 정국 또 다른 불씨
문제는 이런 논쟁을 거친 뒤 법안을 처리하기엔 남은 20여 일이란 기간이 빠듯하다는 점이다. 기타 사항은 내년 2월 말까지 논의하기로 돼 있지만 주요 법안은 새해 예산안과 연계해 연내 입법화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더욱이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법안이 통과되려면 여야 합의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새누리당이 반대할 경우 연내 입법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렇게 될 경우 특위에서 형성된 전선이 새해 예산안과 민생법안 심의까지 확대될 수 있다.

 이에 대해 특위 위원장을 맡은 민주당 정세균 의원은 “원래 시험문제는 풀 수 있는 것부터 풀어야 한다. 3차 방정식부터 시작하면 안 된다. 우선 여야가 합의한 내용부터 추진해 나가겠다”며 단계적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여야 모두 벌써부터 양보 불가를 외치고 있어 타협점 마련이 결코 쉽지 않은 실정이다.

 특위를 둘러싼 논란 못지않게 뜨거운 감자는 특검이다. 특위가 실제 전투가 벌어지는 백병전이라면 특검은 아직 고공전이다. 여야는 지난 3일 4자회담에서 ‘특검의 시기와 범위 문제는 계속 논의한다’고 합의했다. 여야 모두 동상이몽 속에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할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당장 새누리당 유일호 대변인은 “문자 그대로 논의를 하자는 것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홍문종 사무총장도 “대선이 끝난 마당에 대선 문제로 특검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 민병두 본부장은 “새누리당이 꿈쩍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시기와 범위라는 단어를 명문화하면서 논의할 근거를 확보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특검은 여야 지도부의 향후 당내 입지와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민감한 문제다. 그동안 특검에 대한 찬반 입장이 확고하던 여야 강경파들이 준예산 편성 우려 등 여론을 의식해 합의를 암묵적으로 추인하면서 이번엔 별다른 당내 갈등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연내 특검이 도입되느냐, 무산되느냐에 따라 어느 한쪽은 심각한 내홍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양특(특검·특위)에 대표직을 걸겠다”고 선언한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벼랑 끝 승부수를 던져야 할 입장이다. 이번 4자합의로 일단 한 달이란 시간은 벌었지만 연말까지 특검 문제에서 진전을 보지 못할 경우 당내 강경파의 강한 반발을 면키 어려운 실정이다. 김 대표가 합의 다음날인 4일 열린 의원총회에서 “특검을 반드시 관철시키겠다는 우리 당 의지에는 조금도 변화가 없다”고 거듭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의총 후 ‘특검은 물러설 수 없는 국민의 요구’라는 의원 전체 명의의 결의문을 채택한 것에도 “특검 없는 특위는 무덤”이라는 강경파 의원들의 불만을 달래려는 지도부의 고심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의 입장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임기가 내년 5월까지인 상황에서 이번 고비를 잘 넘겨야 대표직을 유지한 채 내년 6·4 지방선거를 치를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하지만 당내 강경파는 물론 “야당의 정치논리에 휘둘려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국정원 입장도 고려하면서 대야 협상도 파국으로 몰고 가지 않기는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위에 주어진 기간은 20여 일. 여야가 3대 난제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할 경우 지도부 책임론과 함께 새해 예산안 처리를 둘러싼 강 대 강 대치가 재연되면서 연말 정치권이 또 한 차례 중대 고비를 맞을 전망이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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