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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메어린이들 서울구경|양구 공수리 분교생 16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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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태백산맥의 기슭, 강원도 양구군 양구면 공수리 군량국민학교 공수분교(분교장 안사헌) 어린이 16명이 이 마을 근처에 주둔했던 한 군인 박광철 상병(육군 제2102부대 소속·24)의 주선으로 꿈에 그리던 서울구경을 했다.
공수마을은 양구에서 북쪽으로 4km 떨어진 파노호 건너 마을. 전깃불도 없는 두메마을이다. 공수분교생 65명 중 5, 6학년 16명이 개교이래 처음으로 지난 24일 서울에 온 것이다.
이들 어린이들이 수학 여행길에 오르던 날 이른 새벽부터 공수부락(37가구)은 동네잔치라도 벌이는 듯 야단이었다. 온 마을주민이 마을 앞 파노호 나루터에 횃불을 들고 나와 서울에 가는 16명의 어린이들을 환송했다. 학생들의 손에는 낀 고구마와 옥수수를 싼 보자기가 들렸고 이들의 서울여행을 주선한 박광철 상병 집에 줄 선물로 씀바귀나물 1상자와 꿀 1병이 나룻배에 실렸다.
춘천까지 버스 편으로 간 다음 이날 하오 4시30분 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5학년 조명숙양(11)은 『기차가 길게 생긴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서울 오면서 탔던 기차는 역시 길었다』고 신기한 듯 이야기했다.
단돈 1백원이 어려운 산골에서 16명의 어린이가 3박4일 동안의 서울구경을 하기란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이었다.
지난 6월 이 마을근처 육군 제2102부대에 배속된 박광철 상병이 어린이들과 어울리면서 이곳 어린이들이 무척도 서울구경을 원하는 것을 알고 서울에 있는 H대학 동창들의 도움으로 이들이 서울에 머무는 경비 3만여 원을 마련해 주었다.
박 상병은 지난 15일 어린이들의 수학여행기간에 맞춰 부대에서 휴가를 얻어 먼저 상경, 이들의 숙소를 예약하고 스케줄을 짰다.
서울에 도착한 이들은 박 상병의 안내로 25일에는 창경원에서 코끼리와 하마를 보았고 중앙「매스컴·센터」에 들러 신문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뉴스가 방송되는 것은 견학했다. 26일 아침엔 남산어린이회관을 들렀고 서울시청을 방문했으며 백화점도 구경했다.
6학년 박천우군(13)은 『산처럼 높은 집들이 무너질까 겁이 났다』면서 창경원에서 본 코끼리가 긴 코를 놀려 과자를 주워 먹는 것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했다. 또 6학년 안종실양(13)은 『이발소 앞에 빨간 줄과 파란 줄이 쳐진 불이 빙빙 돌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고 서울에는 『이상한 냄새가 많이 나 머리가 아팠다』고 했다.
인솔교사 박재학(31)씨는 박 상병의 은혜를 학생들과 함께 감사한다면서 이번 서울여행에서 학생들이 너무 많이 생소한 것을 보고 들었기 때문에 앞으로 이것을 어떻게 소화할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박 상병은 『산간벽지에서 어렵게 공부하는 어린이들에게 수학여행길을 열어주고 싶었을 뿐』이라면서 자신의 선행을 겸손해 했다. [김재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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