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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성별·국적·순혈주의 버렸다 … 최대 발탁승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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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왼쪽부터 연경희 상무, 장세영 상무, 박현호 상무, 왕통 부사장, 그렉듀디 상무, 이인재 전무.

삼성그룹이 5일 역대 최대 규모의 임원 ‘발탁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성별·국적·공채 여부에 상관없이 실력이 검증된 인물을 파격적으로 전진 배치해 그룹을 역동적으로 바꾸겠다는 이건희(71) 삼성전자 회장의 의지가 반영됐다.

 삼성은 이날 부사장 51명, 전무 93명, 상무 331명 등 총 475명의 승진자를 포함한 2014년 정기 임원 인사를 발표했다. 지난해(485명), 2011년(501명)에 비해 승진자는 줄었지만 ‘발탁승진’은 85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발탁승진은 정해진 승진연한을 채우지 않아도 우수한 업무성과를 올린 임직원을 조기 승진시키는 삼성의 인사제도다. 또 15명의 여성 임원을 배출, 여성 인력에 대한 역대 최대 승진 인사도 이뤄졌다.

 이번 임원 인사의 키워드는 ‘성과 보상’ ‘여성 중용’ ‘순혈주의 타파’로 요약된다. 우선 지난 2일 단행된 사장단 인사에 이어 이번 임원 인사에서도 삼성전자의 ‘잔치’는 계속됐다. 지난해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35%의 시장 점유율을 달성하는 등 사상 최대 실적을 낸 데 따른 보상이다.

 전체 임원 승진자 가운데 48%가 삼성전자 출신(226명)이었다. 특히 스마트폰 ‘갤럭시’ 열풍의 주역인 세트부문에서는 35명이 발탁승진했다. 최대 경쟁자인 애플에 맞설 인재를 키우고, 경쟁업체의 공세가 거센 중국에서 분투하는 이들에게 걸맞은 보상을 해주자는 취지다.

 삼성전자에선 부장은 만 4년, 상무 6년, 전무는 만 3년을 근무해야 승진할 수 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개발 박현호 상무는 3년 만에 전무 직함을 달았다. 보기 드문 파격대우다. 하드웨어 개발 김학상 상무는 2년 앞서 전무로 진급했다.

 여성 임원도 대거 배출하며 ‘유리천장’을 깨는 데 신경을 섰다. 2010년 7명에 불과했던 여성 임원은 2011년 9명, 지난해 12명이 승진한 데 이어 해마다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특히 올해는 이건희 회장이 주도한 ‘신경영’ 출범 초기(1992~94년) 대졸 공채로 입사한 여직원 4명이 승진하면서 여성 공채 임원시대를 열었다. 이는 “지구의 절반이 여성인데, 여성인력을 우대하지 않고는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이 회장의 경영철학이 반영됐다는 게 삼성의 설명이다.

 부장 2년차에 ‘별’을 단 삼성전자 장세영 부장은 올해 39세 나이로 최연소 임원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삼성그룹에서 30대에 임원이 된 유일한 사례다. 삼성전자 최초로 여성 주재원을 맡았던 연경희 부장은 뉴질랜드 매출을 늘린 공로로 1년 빨리 승진했다. 삼성카드의 이인재 상무는 이 회사에서 최초로 탄생한 여성 전무로, 정보통신(IT) 시스템 전문가 출신의 경력 승진자다.

 ‘순혈주의’도 버렸다. 그룹 내부에 만연했던 ‘공채 우선주의’를 타파하고 외부 영입인력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글로벌 기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외국인 임원 승진은 사상 최대 규모로 이뤄졌다. 올해 외국인 승진자는 지난해(10명)보다 많은 12명이다. 삼성전자 중국 휴대전화 영업담당 왕통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지난해 팀 백스터 미국법인 부사장에 이어 두 번째로 탄생한 외국인 부사장이다. 중국 휴대전화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기여한 성과를 인정받았다. 삼성전자 실리콘밸리 연구소의 스마트TV 사용자경험(UX) 전문가인 그렉듀디 부장(VP), 스페인법인 통신영업 가르시아 VP 등도 브랜드 위상을 높인 공로로 승진했다. 삼성은 앞으로도 외국인을 중용하는 인사정책을 강화할 계획이다.

 경력입사자 가운데에선 150명이 승진 대상에 이름을 올려 역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연구개발, 영업마케팅, 제조·기술, 해외 현지 근무인력의 승진을 늘리는 등 현장의 성과를 중시하겠다는 방침도 재확인했다. 한편 올해 신임임원 평균 나이는 47.1세로 지난해보다 0.2세 많아졌다.

손해용·조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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