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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에 살고 지고…] (4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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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시는 온 몸으로, 바로 온 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김수영

어느 시대나 문학은 그 시대와의 싸움에서 온 몸으로 밀고 나갔다. 정몽주.성삼문.이순신의 시조가 그렇게 살과 뼈 속에서 우러나왔고 허균의 소설도 그랬다.

온 몸으로 쓰는 시나 소설을 두고 무엇을 쓸 것이냐, 어떻게 써먹을 것이냐를 따지는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난 것은 사회주의 문학이론으로 뭉친 카프가 탄생하면서부터였다.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의 에스페란토어의 약칭인 카프(KAPE)가 결성된 것은 1922년 8월 23일이었고 박영희.김팔봉.이상화.심훈.임화.박팔암 등이 이 운동에 가담, "우리들의 공산주의 예술의 볼셰비키적 대중화의 정당한 방침을 확립시켜야 할 것이다"고 천명한다. "프로예술은 노동자,농민의 것으로! 프로예술 운동가는 노동자 농민 속으로!" 의 실천목표를 내걸고 문학예술의 계급투쟁에 나선다.

그러나 31년과 34년 두 차례의 카프회원 검거와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며 잃은 것은 예술자신"이라고 박영희가 34년 1월 동아일보에 카프 탈퇴선언을 발표하면서 조직은 붕괴돼 김팔봉.임화의 합의 아래 김남천이 35년 5월 21일 경기도 경찰국에 해산계를 내 끝이난다.

해방공간에서 김동리가 김동석.김병규를 상대로 순수문학론을 전개한 이후 6.25전쟁으로 잠복했던 순수 참여의 논쟁이 본격적으로 불이 붙은 것은 67년 가을이었다.

10월 12일 세계문화자유회의 세미나에서 김붕구가 '작가와 사회'라는 강연에서 "사회적 자아가 창조적 자아를 압도해 작품을 제대로 생산하지 못한 사르트르와 예술지상주의나 자연발생적 사회참여로 성공한 카뮈"를 비교하면서 참여론에 일침을 가했다.

임중빈은 "시대에 대한 책임이 없이는 인간상실의 언어가 계속될 뿐"이라고 반론을 썼고 선우휘는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고 순수론을 옹호하고 나섰다.

이렇게 발단된 불길은 이어령과 김수영에 옮겨붙으면서 소리를 내며 타오른다. 김수영은 68년 '사상계'1월호에 쓴 '지식인의 사회참여'에서 6.8부정선거.동백림 간첩사건 등에서 지식인들이 보인 모호한 논조를 비판하면서 그 예로 이어령을 꼬집는다.

이어령은 조선일보(2월 20일)에 '누가 조롱을 울리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오도된 참여론이 오늘의 한국문화를 위협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이어 김수영의 '실험적 문학과 정치적 자유'(조선일보 2월 27일), 이어령의 '문학은 권력이나 정치이념의 시녀가 아니다'(조선일보 3월 10일)로 되받아 치기를 한다.

작가의 사회적 책임을 내세우는 참여론과 사회참여가 오히려 문학의 자유를 침해받게 한다는 순수론은 동전의 양면성과 같은 것이어서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편을 가르는 것부터가 무리인지 모른다.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김수영과 이어령의 순수 참여 논쟁은 68년 6월 16일, 이병주 등과 술자리를 함께 하고 용강동 집으로 돌아가던 김수영이 밤 11시30분쯤 서강종점에서 인도에 뛰어든 버스에 치여 말을 거두면서 끝이 난다.

광화문 예총회관(지금의 세종회관자리)마당에서 6월 18일 거행된 김수영 영결식에서 이어령은 내게 "마지막 카드를 쓸 수가 없게 됐다"고 갑작스런 그의 타계를 막막해 했다.

이근배 <시인.한국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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