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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자 정유 회사의 파격적 계약 조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가 그토록 공개를 기피하던 국내 3대 정유 회사와의 계약 내용이 이번 국감을 계기로 부분적으로나마 드러났다.
지상에 보도된 계약 조건을 보면, 「걸프」·「칼텍스」·「유니언·오일」 등 국제 석유자본에 대해 베풀어준 특혜 조치는 우리의 외자 도입 사례 중 유류의 파격적인 대접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어 새삼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산업 정책상 정유 업체의 유치는 필수적이고 또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하나, 그렇게까지 일방적인 특혜를 주지 않으면 안 되었겠느냐에 대해 일종의 굴욕감마저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3대 정유 회사에 대한 특별 우대 조치는 대체로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는 국내 투자액과 50대 50의 같은 비율로 투자를 하고 있으면서도 운영권은 거의 전적으로 국제 석유 자본측에 주었고, 둘째는 원가 상승 요인을 즉각 제품 가격에 반영, 다른 외자 업체와는 비교도 안 되는 높은 이윤율을 보장해 주었고, 세째로 유통 과정에까지 투자할 수 있는 길을 터 주었다는 사실 등이라 하겠다.
이들 정유 산업의 운영권은 계약 문서상으로는 일견 일정한 조건을 충족한 뒤에는 이를 한국 측에 이양토록 되어 있으나, 조건이 너무 까다로와 그 이행은 80년대 후반에 가서도 그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말까 할 가혹한 것으로 돼 있음에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건설 당초부터 건설 단가가 높고 채산성이 낮다는 것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경인 「에너지」는 5천8백여만 「달러」의 차관을 상환해야만 운영권 이양 여부를 거론토록 못 박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것은 한국 측의 운영권 인수를 거의 불가능한 상태로까지 몰고 가는 사례로 지적할 수 있다.
자본제 경제의 대 원칙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자유 경쟁을 통해 기업적 과실을 거두는데 있다. 그런데도 독과점 제품인 석유만은 국제 원유가 상승, 운임 인상, 국내 환율 및 물가앙등 등 가격 인상 요인을 제품 가격에 즉각 반영토록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호남 정유의 「카운터파트」인 「칼텍스」에는 연 12%의 누적적 우선주를 인정, 이 또한 파격적인 이윤을 보장해주고 있다.
국제 석유 자본에 대해 이 같은 특혜를 원천적으로 인정해줌에 따라 66년 이후 지난 7월까지 당국은 이들에게 무려 82·4%나 가격 상승을 용인해야만 했고, 해마다 수십억원의 이익을 국내 경제 여건에 구애됨이 없이 반드시 보장해 주었었다.
즉 71년 중 유공은 27억윈, 호유는 3억6천3백만원의 흑자를 본데 이어 7월21일 유류 가격을 평균 14·1% 인상해 줌으로써 올해에는 당초 1억7천9백만원의 적자를 예상하던 유공이 38억8백만원의 흑자, 20억1천7백만원의 적자였던 호유는 2억2천5백만원의 흑자를 작위적으로 계상토록 했던 것이다. 이 같은 숫자를 볼 때 우리는 도대체 일개 기업의 연간 이익이 몇 십억원씩이나 되는 국내 기업이 몇 개나 되며 또 정부가 특정 기업의 이윤을 보장해 주기 위해 국민의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는 원리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들 대자본을 가진 「메이커」들은 유통 과정에까지 개입, 유류 대리점·주유소의 무질서한 난립을 촉발했는가 하면, 과당 경쟁으로 영세 대리점의 집단 도산 사태를 야기 시킨 횡포까지 자행하고 있다. 그 단적인 증거로서 이들 3대 석유 회사가 도산 대리점의 담보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만도 1백억원에 이르고 있다는 보도는 그 피해 정도의 거대함을 짐작케 하고도 남음이 있다. 더군다나 이들은 각종 면세 유류를 부정 유출하여 거액의 세금 포탈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 이번 국정 감사에서 지적되고 있어 우리는 날카로운 관심을 가지고 그 귀추를 주지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감에서 일부 야당 의원들이 지적한 2백억원의 탈세 행위의 진위 여하는 알 수 없으나 작년에 국세청이 부정 유류 유출 조사 결과 유공 6천만원, 호유 3천만원의 추징금을 거두었고 올해에 또 호유에서 2천5백만원을 추징했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는 유류계 정유 회사의 기업 윤리 부재를 준열히 지적하면서 정부도 나머지 계약 내용을 국민 앞에 과감히 공개하고, 부조리한 조건들은 뒤늦게라도 이를 시정하기를 권고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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